사회 사회일반

고려대병원, 中企 기술 도용 사적 이익… 부끄러운 지성의 요람

연구과제 핵심기술 도용 정황

지난해 교수 2명 권고사직 조치

"용서받지 못할 행위" 비난 거세

K씨,L씨 "도용한적 없다" 해명



‘병원·기업·투자밀착형 의료기기 개발 플랫폼’을 모토로 운영 중인 고려대병원 의료기기상생사업단(이하 의료기기상생사업단)에서 추진과제로 검토한 바 있는 한 중소기업의 핵심기술을 소속 연구교수들이 가로채려던 정황이 포착돼 ‘불명예’ 퇴직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기술력이나 아이디어(아이템)는 있으나 자금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을 돕는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는 곳이 오히려 이를 도용해 사적 이익을 챙기는 창구로 악용됐기 때문이다. 의료계 안팎에서는 “임상시험이나 기술자문 등으로 중소기업의 기술개발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하는 연구교수들이 본분을 망각한 채 벌인 용서받지 못할 행위”라며 “마치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 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26일 의료 업계 등에 따르면 의료기기상생사업단은 지난해 말 소속 연구전담교수인 K씨와 L씨를 연구인력에서 제외하는 등 권고사직 조치했다. 이들이 연구과제로 추진을 검토했던 한 중소기업의 핵심기술을 도용하려 한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K씨 등이 자신들 명의로 세운 회사인 M사를 앞세워 기술이전 방식으로 가로채려 했던 것은 ‘스마트폰을 이용한 배란 측정 방법’과 ‘스마트폰용 타액 측정장치’ 등 J사가 특허를 보유한 기술이다. 이들은 의료기기상생사업단이 해당 기술을 연구과제로 선정하지 않자 지난해 10월 J사에 M사 명의로 기술이전 계약을 제의했다. J사가 선급 실시료 1,000만원을 지급하면 M사가 기술자문을 제공한다는 내용으로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계약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단서조항에 있었다. M사는 J사가 해당 기술에 대한 권리를 독점적으로 쓸 수 있는 전용실시권을 2년으로 제한했다. 더구나 2년간 제품 개발로 발생할 수 있는 매출의 5%를 M사에 지급하도록 하면서도 지적재산권 출원·등록·유지에 대한 비용은 J사에서 모두 부담하게 했다. ‘계약기술의 유효성에 대해 다투지 않는다’는 조항도 넣어 J사는 M사에 대해 이의 제기조차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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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사 고위관계자는 “계약 내용만 봐도 자사가 보유한 기술을 도용한다는 행위로밖에 볼 수 없다”며 “이익만 챙기고 어떤 책임도 지지 않으려는 ‘노예계약’이라 체결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이들은 계약서를 내밀면서 따로 특허 출원까지 추진했다”며 “사태가 심각한데도 의료기기상생사업단은 제출한 자료와 제품 샘플조차 돌려주지 않고 오히려 이를 외부에 알리지 말고 소송도 걸지 말라는 등 사건을 무마하는 데만 급급했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서울경제신문이 이 사태에 대한 취재를 시작하자 의료기기사업단은 “불미스러운 사건이 있는 건 맞으나 밝힐 수 없다”며 모르쇠로 일관하는 등 무책임한 모습을 보였다. 의료기기상생사업단의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충정조차도 “아무 설명도 할 수 없다”며 답변을 회피했다.

더 큰 문제는 K씨와 L씨가 의료기기상생사업단을 나온 뒤 발생했다. 이들이 J사와 유사한 제품을 개발 중인 벤처기업 B사의 최고기술책임자(CTO)와 고문으로 각각 자리를 옮긴 것이다. 이들은 사건이 발생한 뒤 J사와 재발 방지를 약속하면서 ‘정보 누설, 해당 기술 이용 가능성 있는 회사 이직, 고문이나 자문 등 행위 금지’라는 내용의 비밀유지서약서에 서명까지 했지만 전혀 지키지 않았다. 게다가 B사가 J사와 유사한 성능의 시제품을 내놓으면서 ‘베끼기’ 논란까지 만들었다. 이에 대해 B사 측은 “K씨와 L씨가 제품 개발에 참여한 건 사실이나 기술자문 역할만 했을 뿐”이라며 “정식 직원이 아닌데다 제품을 출시한 것도 아니라서 문제 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해 K씨와 L씨는 “기술도용을 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안현덕·김민정기자 always@sedaily.com

안현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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