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인 학교에 갔더니 시각장애인 학교로 가라고 하고, 시각장애인 학교로 갔더니 청각장애학교로 가라고 했어요. 그래서 결국 제대로 된 교육 한 번 받아보지 못했어요.”
이승준감독의 다큐멘터리 ‘달에 부는 바람’에서 복합장애를 갖고 태어난 열아홉 소녀(?) 예지의 엄마가 하는 말이다.
듣지도, 보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한 소녀와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 답게 시종 차분하게 이어진다. 발을 구르고,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때리는 예지의 투정과 이를 말리며 견뎌내는 엄마의 인내를 렌즈에 담아 관객들의 가슴을 옥죄는 영화는 동시에 시각과 청각을 느끼지 못하는 예지의 촉수와 신경을 빌어 정상인의 무신경을 꼬집는다.
“빛과 소리 없이도 가능했던 엄마와 딸의 대화를 앵글에 담았다”는 이감독은 2010년 여름 역시 중복장애인의 이야기를 다룬 전작 ‘달팽이의 별’을 촬영하면서 예지의 가족들을 만났다.
그는 “이들의 삶을 관찰하면서 ‘언어가 부재한 가운데 가능한 소통과 공감은 무엇인지 궁금했다”며“인류의 역사를 발전시켜온 것이 ‘언어’지만, ‘그 이상의 무엇이 인간을 더 인간답게 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질문으로부터 다큐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관객들을 설득하는 대신 ‘다만 내가 보고 느낀 것을 관객들과 함께 하고자 했다’는 이감독은 작품의 방점을 ‘사랑’쪽에 찍지만 영화는 한편으로 오만가지 법과 시행령이 넘치는 와중에도 중복장애인을 위한 변변한 제도 조차 없는 당대의 현실을 날카롭게 저며낸다. 제27회 IDFA 경쟁부문에 공식 초청됐고, 제11회 EBS국제다큐영화제(EIDF) 유니세프 특별상을 수상했다. 26일 아리랑시네센터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