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은행 자본확충을 위한 출자 문제를 놓고 정부와 한국은행이 막판 조율 중인 가운데 한은이 주최한 세미나에 참석한 미국의 제임스 불러드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 총재가 “기업 구조조정에 중앙은행이 직접 참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발언해 주목을 끌고 있다. 그는 가시화하고 있는 미국 금리 인상과 관련해서는 글로벌 금융시장에 큰 충격이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불러드 연은 총재는 30일 서울시 중구 조선호텔에서 열린 한국은행 국제 컨퍼런스에 참석해 기자회견을 열고 “중앙은행은 장기적 관점에서 거시정책을 수행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불러드 총재는 우리나라 정부가 국책은행의 자본확충에 한은의 역할을 요구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사견임을 전제하고 “구조조정 문제는 세금을 내는 국민의 의견 등을 고려해 의회를 통해서 결정할 문제”라고 조언했다. 중앙은행의 독립성도 강조했다. 불러드 총재는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정책도 변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백악관이 변하더라도 연준의 정책은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며 “독립된 중앙은행이 국가와 세계에 더 크게 기여할 수 있으며 중앙은행이 정치적으로 되지 않을 경우에 더 나은 장기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말했다.
불러드 총재는 지난 2008년부터 세인트루이스 연은 총재를 맡고 있으며 연준 위원들 중에서도 가장 뚜렷한 매파로 꼽힌다. 2015년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뽑은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학자 순위에서 앨런 그린스펀 전 연준 의장보다 높은 7위에 선정됐다.
불러드 총재는 미국 금리 인상 시기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그는 “경기 회복세가 예상보다 약하지 않다”며 “2·4분기에 명확한 신호를 볼 때까지 모든 데이터를 검토하겠다. 금리 인상은 가능한 모든 정보를 종합해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불러드 총재는 또 “글로벌 시장은 미국 금리 인상에 잘 대비하고(well prepared) 있으며 지난해 12월 금리 인상시에도 큰 충격을 받지 않았다”며 “(미국이 금리 인상에 나서더라도) 세계 금융시장에 큰 충격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재닛 옐런 연준 의장은 27일(현지시간) 미국 하버드대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앞으로 수개월 안에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일이 적절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한편 이주열 한은 총재는 이날 개회사에서 “가계소득의 원천이 되는 고용을 확대하기 위한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총수요 증대를 유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총재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저성장 기조가 장기화하면서 고용이 성장을 이끄는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대되고 있다”며 “근로자 간 임금 및 고용 조건의 불균형 완화, 사회안전망 확충을 통해 미래에 대한 경제주체들의 불안감을 줄여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제4차 산업혁명’으로 노동 수요가 위축되면서 고용이 감소할 것이라는 견해가 우세하다”며 “그러나 인공지능·빅데이터 등 디지털 기술을 다양하게 융합하고 활용할 수 있는 인적자원이 많이 확보된다면 고용과 성장에 오히려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