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금융사의 투자 전문가가 자산을 운용해주는 일임형 개인연금 상품을 도입한다. 여러 개인연금 상품을 한 번에 관리할 수 있는 통합 계좌가 생기고 적립금 중 일부를 중도에 찾아가는 것도 허용해주기로 했다.
금융위원회는 30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개인연금법 제정안을 마련해 올해 하반기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보험업법과 자본시장법 등 여러 법안을 통해 복잡하게 규율되고 있는 개인연금 상품을 하나의 제정안에 담아 체계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취지다. 개인연금 적립금 규모는 급속한 고령화의 영향으로 지난 2012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100조원 가까이 늘어 300조원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금융위의 개인연금법 제정 방안을 보면 우선 기존의 보험·신탁·펀드 외에 일임형 상품이 새로 추가된다. 개인연금 상품은 운용하는 금융사에 따라 연금저축보험(보험사), 연금저축신탁(은행), 연금저축펀드(자산운용사) 등으로 나뉜다. 이번에 일임형 상품이 도입되면서 랩어카운트(종합자산관리계좌)와 같은 일임형 상품을 통해 투자자의 자금을 직접 운용해본 증권사들이 수혜를 볼 것으로 전망된다. 은행은 3월 출시된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에 한해서만 투자일임업이 허용됐으며 보험사는 원칙적으로 자격을 갖출 수 있으나 실제 인가받은 곳은 없다.
일임형 개인연금 상품은 금융사별로 만들어진 대표 투자상품군(모델 포트폴리오)이나 생애주기형(라이프사이클) 펀드 형태로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ISA에도 적용된 모델 포트폴리오는 금융사가 투자 자산 비중을 고객에 제시한 뒤 직접 운용하는 방식이며 라이프사이클 펀드는 청년기에 위험 자산에 주로 투자하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채권 등 안전 자산을 더 많이 담도록 한 상품이다. 금융사가 개인연금 상품을 판매하는 과정에서 앞으로 투자자들의 성향과 적합한 유형을 파악한 뒤 권유하도록 한 규정도 마련된다.
아울러 금융위는 투자자들이 금융사별 개인연금 상품을 쉽게 관리할 수 있도록 통합 계좌를 도입하기로 했다. 금융권 전체를 포괄하는 것은 아니지만 ‘1사 1계좌’로 여러 개인연금 상품의 납입액, 평가액, 예상 수령액, 수수료 지급 명세 등을 한눈에 확인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금융위 관계자는 “개인이 효율적으로 자산관리를 하려면 ISA처럼 전체 금융권에서 1계좌만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다양한 금융사를 통해 개인연금 상품에 가입하는 점을 고려해 1사 1계좌로 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개인연금법 제정안 입법을 계기로 그동안 원칙적으로 금지됐던 적립금의 중도 인출도 일부 허용된다. 금융위는 개인연금 적립금 중 최대 30%까지는 유동성이 급한 투자자가 중간에 찾아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되 주택구매, 질병·요양, 천재지변 등 특별한 사유가 발생할 때는 추가 현금화를 인정해주기로 했다. 개인연금 상품 가입자의 수급권을 보장하기 위해 개인연금 압류의 상한선을 시행령을 통해 확정될 예정이다.
박주영 금융위 투자금융연금팀장은 “금융당국과 기획재정부·보건복지부·고용노동부 등이 함께 참여하는 ‘연금정책협의회’를 운영할 예정”이라며 “협의회에서 중·장기 정책 방향을 수립해 국민들이 노후 대비를 위해 필요한 자산을 안정적으로 축적할 수 있도록 협조체계를 구축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