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에서 거짓말을 잘한다는 건 분명 생존에 유리한 덕목 중 하나일 것이다. 예컨대 상사에게 잘 보이려 마음에도 없는 칭찬을 한다거나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고 실력을 조금 부풀림으로써 득을 볼 수 있다는 점이 그렇다. 성형수술이나 표절, 대필·대작 같은 본격적인 거짓말도 크게 다를 바 없다. 들키지 않는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고 들킨다 해도 명예(?) 정도만 훼손될 뿐이니 얼마나 남는 장사인가. 하지만 그렇다고 진실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김진황 감독이 첫 장편 데뷔작 ‘양치기들’을 통해 말하고자 한 것은 바로 이런 이야기들이다.
‘완주(박종환 분)’는 한때 배우를 꿈꿨지만 지나치게 솔직한 나머지 교수와 충돌해 연기를 관두고 지금은 누군가의 친구나 애인 역할을 대신해주는 역할대행업자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큰 의뢰가 들어오는데 살인 사건의 가짜 목격자 노릇을 해달라는 내용이다. 큰돈에 정신이 팔려 의뢰를 수락하긴 했는데 알고 보니 자신이 거짓으로 증언해 몰아붙인 용의자가 진범이 아닌 것 같다. 완주는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돌이키려 하지만 꼬이고 꼬인 거짓말들은 쉽게 풀어지지 않는다.
이처럼 거짓말의 함정에 빠진 완주를 따라가는 게 이야기의 한 축이라면, 다른 한 축은 살인사건의 진범을 두고 진실 대신 침묵을 택한 청춘들이 끌고 간다. 군대 시절 선후임 간이던 다섯 명의 청년 중 한 명이 죽고 한 명이 용의자로 지목된 사건인데 나머지 세 명은 각자가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해 말하기를 꺼린다. 누군가의 친구라는 이유로, 사실은 내가 휘말리기 싫다는 이유로 택하는 침묵은 비록 적극적인 거짓은 아닐지 몰라도 매한가지의 불행을 낳고 만다는 이야기가 설득력 있게 펼쳐진다.
얼핏 봐서 ‘양치기들’이 다루고 있는 소재나 담고 있는 주제 의식이 특출나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감정이 과잉과 서사의 군더더기를 모두 뺀 채 꼭 필요한 것들로만 채운 1시간 20분은 긴장감과 몰입도 면에서 여느 상업 영화 못지않은 재미를 준다. 화려한 볼거리는 별로 없는 영화지만 그래서 오히려 현실 세계의 한 장면처럼 와닿는다. 이야기를 즐기는데 그치지 않고 공감과 성찰로까지 이어지는 건 그런 이유다.
‘양치기들’은 ‘잉투기(2013)’,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2015)’ 등 주목받는 저예산 독립영화들을 배출한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장편제작연구과정 작품이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감독조합상 감독상을 받는 등 일찌감치 주목받았으며 올해 4월 개최된 북경국제영화제와 6월 22일부터 열리는 뉴욕아시안영화제에서도 공식 상영된다. 2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