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영화나 드라마에서 불치병의 ‘단골 소재’로 자주 등장했던 백혈병. 이제는 조혈모세포(골수) 이식, 표적치료제 등 치료법이 발달해 예전에 비해 완치율이 높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치료가 까다로운 질병으로 꼽힌다.
그중 성인이 걸릴 위험이 높은 급성 골수성 백혈병은 전체 백혈병의 43%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빈번하게 나타나는 병이지만 생존율은 여전히 4명 중 1명꼴에 그친다. 또 다른 백혈병에 비해 임파선이나 신장·척수 등 장기에 전이가 잘돼 치사율이 높다. 고령 환자일수록 생존율이 급격히 떨어져 고령화 사회를 맞아 완치를 위한 치료법이 절실한 질병이기도 하다. 만성 골수성 백혈병의 경우 2000년대 초 세계적인 제약사인 미국 노바티스가 개발한 ‘글리벡(Gleevec·성분명 이매티닙)’의 등장으로 치료율이 획기적으로 오르고 현재 ‘2세대 글리벡’이라 불리는 타시그나(성분명 닐로티닙), 스프라이셀(성분명 다사티닙) 등의 치료제가 나온 상태지만 급성 골수성 백혈병의 표적치료제는 전무한 실정이다.
미래창조과학부가 주최하고 한국연구재단·서울경제신문이 공동주관하는 이달의 과학기술자상 6월 수상자인 심태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화학키노믹스연구센터장은 급성 골수성 백혈병 치료를 위한 표적항암제 후보물질인 ‘FLT3 삼중돌연변이종 동시저해작용기전의 후보물질 (KIST136)’을 도출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탈모 등 극심한 후유증을 남기는 항암제 치료, 고령 환자에게는 상대적으로 효능이 떨어지는 골수 이식에 비해 표적치료제는 부작용이 적고 치료 효과가 우수하지만 극복해야 할 과제가 아직 많다.
그중 하나가 약물에 익숙해져 발생하는 내성을 없애는 일이다. 급성 골수성 백혈병이 발병하는 환자의 35%가 FLT3(FMS-like tyrosine kinase 3)이라는 단백질의 돌연변이와 관련이 있다. 그중에서도 다수를 차지하는 FLT3-ITD(Internal Tandem Duplication) 단백질의 돌연변이를 막기 위해 미국 제약사인 앰빗바이오사이언스가 개발하고 있는 ‘퀴자티닙’이 대표적인 선두 후보물질로 명성을 얻었지만 한계가 있었다. 심 센터장은 “퀴자티닙을 투약한 환자 중 33%가 재발을 겪었는데 약물에 익숙해져 생기는 내성이 주된 원인으로 밝혀졌다”며 “약물 내성을 유발하는 돌연변이종을 극복하는 차세대 표적항암제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해 연구를 시작했고 KIST136을 도출하게 됐다”고 말했다.
KIST136은 FLT3-ITD뿐 아니라 FLT3 키나아제 부위에서 생성되는 약물 내성 돌연변이종에 대해서도 효능이 뛰어나다는 것이 심 센터장의 설명이다. 동물실험에서도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심 센터장은 “실험 쥐에 투여한 결과 최대 95%의 높은 저해율을 보였다”며 “FLT3-ITD를 보유한 세포들의 성장을 강하게 억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강조했다.
심 센터장의 연구 스타일은 ‘우직함’ ‘선택과 집중’으로 요약된다. 심 센터장을 급성 골수성 백혈병 표적치료제 연구로 이끈 것은 지난 2003년부터 미국 노바티스 샌디에이고연구소에서 과제책임자로 재직했던 시간이었다. 심 센터장은 “이때부터 인산화 효소인 키나아제에 대해 연구를 시작했다. 인산화 효소가 돌연변이에 의해 과다하게 활성화되면 백혈병이나 암과 같은 다양한 질환이 유발된다”며 “키나아제를 저해하는 물질을 설계, 합성해서 후보물질을 도출하는 연구를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이 과정에서 정부의 혁신연구 지원이 큰 도움이 됐다”며 “연구자마다 다를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연구는 깊이가 있어야 하고 그래야 연구주제 확장에도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