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52·사진)이라는 이름이 주는 선입견은 기대감만큼이나 크다. “(내 영화가) 잔인하다는 것과 불친절하다는 게 문제죠. 그건 사실과 다릅니다.” 정확히 두 문장으로 정리해 말하는 감독에게선 약간의 답답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1일 서울경제신문과 만난 그는 “특히 이번 영화 ‘아가씨’는 난해하거나 폭력적인 이야기가 아니니 미리 싫어하지 말라고 일러두고 싶다”며 “청소년 관람 불가라는 한계는 있지만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봐서 흥행 영화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며 웃었다. 이날 인터뷰에서는 박 감독은 흥행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등의 여러 선입견으로부터 자유롭고 싶다는 마음을 강하게 드러냈다.
영화 ‘아가씨’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지점은 노련한 배우 김민희(히데코 역)와 신인 김태리(숙희 역)의 연기 앙상블이다. 박 감독은 “기본적으로 ‘아가씨’고 ‘하녀’이니 서로 신분 차도 있고 또 나이 차도 있고, 역할 자체로 위아래 차이가 진다. 여기에 한 꺼풀이 더 씌워지면 재밌지 않을까 싶어 한 명은 스타, 한 명은 신인으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또 처음에 있던 두 사람 간의 격차는 영화 말미 모두 사라지는 데 그 여정이 좀 더 극적이길 바란 선택이었다고 덧붙였다.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원작 소설 ‘핑거스미스’를 한국적으로 바꾸는 과정에서도 여러모로 공을 들였다. “식민지 시대라는 게 핵심이었어요. 소설은 아무리 신분이 달라도 어쨌든 같은 나라 사람인데 우리는 아예 나라가 달라지니깐, 다른 민족이라서 생기는 그런 긴장 관계 등이 아주 중요한 배경으로 작동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이어 박 감독은 “쉽게 말하자면 ‘코우즈키(조진웅 분)’가 중요해진 것”이라며 “친일파 한국인인데, 단순히 ‘일본에 붙어먹어야지’가 아니라 ‘일본인이 돼야지’라고 하는 정도의 극단적인 친일파라는 인물은 이런 배경에서 탄생했다”고 설명했다.
여성 동성애라는 파격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는 만큼 성적 묘사도 화제가 됐다. 박 감독은 ‘아가씨’를 관음적 야한 영화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예쁘고 우아하고 아름답게 찍으려고 했다”며 “충동과 성욕의 급한 해소가 아니라 서로 간에 쌓아 올려간 친밀감을 표시하고 서로 아끼려는 마음을 강하게 드러낸다는 느낌을 표현하려고 했지만 물론 그건 내 의도고 어떤 사람들은 엄청나게 야하다고도 하더라”며 웃었다. ‘아가씨’는 감독 본인이 “내 영화 중 가장 아기자기하고 대중적인 영화가 될 것 같다”고 말한 영화기도 하다. “관객들을 배려했다고 할 만한 부분이 하나 있긴 한데 플롯(줄거리)을 따라가기 쉽도록 했다는 것”이라며 “기존 내 영화는 한 번 한 얘기는 다시 안 하는데 이번에는 여러 번 반복했다. 플롯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얘기는 안 나오리라 본다”고 말했다.
‘복수는 나의 것’, ‘올드 보이’, ‘박쥐’, 이번의 ‘아가씨’에 이르기까지, 박찬욱 감독이 다루는 소재는 언제나 평범하기보다는 지나칠 정도의 파격에 가깝다는 평을 듣곤 한다. 그는 세간의 평에 대해 “내가 극장에서 보고 싶은 이야기는 기존에 나오지 않았던 새롭고 독특한 이야기”라며 “가끔 지나치게 가다 보니 이해를 못 받기건 사실이지만 원래 균형을 잡기란 어려운 법”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소재는 특별할지 몰라도 그가 하는 이야기들은 언제나 보편적인 울림을 주는 것들이었다. 박 감독은 “자기 잘못에 대해 인지하고 죄의식을 가진 채 괴로워 하는 사람, 그런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고 구원받기 위해 애쓰는 사람, 운명에 굴복하지 않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들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아가씨’는 과연 그 어디에 속하는 이야기일지 확인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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