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차 위에 살포시 드리워졌던 하얀 천이 걷힐 때마다 “우와” 탄성이 흘러 나온다. 세 겹 네 겹으로 빽빽이 들어선 카메라들이 사방에서 폭죽처럼 플래시를 터뜨린다.
국제항구도시 부산이 자동차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부산의 제1 명소 해운대에 자리한 벡스코에서 2016 부산국제모터쇼의 화려한 막이 올랐다. 지난 2일 공식 개막을 하루 앞두고 국내외 25개 브랜드 232종의 차량이 300여명의 취재진에게 첫 선을 보였다. 널찍한 전시장을 가득 메운 신차들이 저마다 깜냥껏 자태를 뽐냈다. 차로 10분만 달리면 바다가 눈앞에 펼쳐지는 부산이다. 마음에 드는 자동차를 골라 타고 광안대교 아래 탁 트인 바다를 가로지르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해봤다. 자동차 때문에 왔지만 자동차만 보고 부산을 떠나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안 먹고 떠나면 계속 머릿속을 맴도는 시장 먹거리부터 옛 정취가 담긴 헌책방 골목까지 부산 당일여행 코스를 소개한다.
■ 6시40분~9시25분 : 새벽부터 부산스러운 부산행 KTX 열차 탑승기
부산행 KTX 열차에 몸을 싣는다. 새벽부터 바지런을 떨었지만 낯선 곳으로의 여행이 주는 설레임이 피곤함을 잊게 만든다. 들뜬 마음으로 잔상으로만 남아있던 부산을 10년 만에 다시 찾았다. 부산역 앞 음악분수가 시원한 물줄기를 내뿜는다. 기분 탓인지 몰라도 바다 짠 내음이 코 끝을 스치는 듯하다.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부산 하늘도 서울 손님을 반기는 기분이 들었다.
■ 10시~15시 : 신차의 향연 2016 부산국제모터쇼
부산역에서 택시로 30분 남짓 달려 부산국제모터쇼가 열리는 해운대 벡스코에 도착했다. 신관부터 돌아보기로 하고 상기된 표정으로 행사장에 입장했다. 국내 완성차 브랜드와 해외 완성차 브랜드간의 ‘소리 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격전지에 발을 내디뎠다. 인피니티 부스 앞에 반원 형태로 수백 명의 취재진이 몰려있었다. 30대 초중반 고객을 공략하기 위해 인피니티가 최초로 내놓은 준중형 신모델 Q30의 색감이 여성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차량 출품 수를 놓고 보면 141대 vs 91대로 해외차가 우세하다. 렉서스, 마세라티, 재규어, 랜드로버 등 해외차 부스가 신관 전체를 차지했고 본관 역시 포드, 링컨, 야마하 등이 면적의 절반 가량을 채웠다. 연예인 마케팅으로 이목을 더욱 집중시킨 곳도 해외차였다. 프레스데이 신차설명회 첫 테이프를 끊은 렉서스는 배우 정우성이 등장해 ‘GS450h’을 소개했다. 메르세데스 벤츠는 이서진·오연서, 마세라티는 차승원, 아우디는 이진욱·옥택연이 참석해 베일을 벗기는 순간을 함께 했다. 연예인이 자리하다 보니 포토타임 역시 상대적으로 길어졌다. 쉽게 접하기 힘든 럭셔리카 주변은 설명회가 끝난 지 한참이 흐른 뒤에도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마세라티, 벤츠 부스가 오랫동안 붐비는 모양새였다.
신관 부스를 따라 천천히 한 바퀴 돌고 나니 점심시간이 가까워졌다. 행사장 내에는 간단하게 요기를 할 수 있는 카페테리아가 마련되어 있지만 식사를 하기에는 부족한 편이다. 바닷가에서 먹는 신선한 회 한 접시를 위해 배를 비워놓을 요량으로 허기만 조금 달랬다. 신관에서 본관까지는 별도의 통로가 마련되어 있어 건물 바깥으로 나가지 않아도 된다. 무빙워크를 따라 10분 정도면 본관에 도착한다.
본관에 들어선 브랜드들은 신관보다 더 많은 차량을 전시해 뒀다. 그만큼 볼거리가 풍성하다는 뜻이다. 말로만 듣던 자율주행차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는 걸 느끼려면 기아차 부스를 방문하면 된다. 기아차 부스에는 자율주행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차량 모양의 구조물에 탑승하면 자율주행 시뮬레이션이 시작된다. 나선형으로 설치된 세 개의 모니터에 주행화면이 속도감 있게 표시돼 직접 운전하는 것만 같다. 더 생동감 있게 체험해 보고 싶다면 바로 옆에 마련된 VR을 선택하면 된다.
색다른 튜닝카도 만날 수 있다. 지나치려다 뒷걸음쳐 들어간 부스 안에 ‘내가 아는 쏠라티가 맞나’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리무진이 있었다. 부산국제모터쇼에서 첫 선을 보인 노블클라쎄 쏠라티는 ‘움직이는 럭셔리 오피스’라는 설명이 딱 들어맞는다. 흔히 아는 미니버스 쏠라티가 국내 첫 고급 튜닝브랜드인 노블클라쎄와 만나 한층 고급스러워졌다. 천연 가죽과 세심한 우드 플로링 마감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감탄이 나온다. 조명 밝기부터 수납공간 여닫는 것까지 리모콘 하나면 된다. 시트에 부착된 터치패널로 좌석조절도 손쉽게 할 수 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다섯 시간에 걸친 모터쇼 관람을 마치고 나니 그제야 허기가 진다.
■ 15시~16시 : 부산하면 바다, 바다 하면 회~
부산하면 바다. 바다 하면 회. 틀에 박힌 공식이지만 빠뜨릴 수 없다. 차로 10분 거리에 민락동 회센터가 있다. 점심식사를 하며 여유롭게 바다를 감상하기에는 최적의 장소다. 민락항에서 나는 신선한 활어를 합리적인 가격에 맛볼 수 있다.
바닷가가 보이는 쪽으로 횟집이 줄지어 서 있다. 아직 휴가철이 시작되지 않아 평일 낮 민락은 여유로움이 묻어났다. 입구 쪽보다는 안쪽에서 보는 바다 풍경이 아름답다. 테라스 쪽에 자리를 잡고 바다를 바라보니 ‘아, 부산 왔구나’ 실감이 난다. 미식의 메카로 거듭난 부산에서 처음 맛보는 신선한 해산물이다. 커다란 접시에 쫄깃한 식감을 자랑하는 다양한 회가 담겨 나왔다. 된장에 청양고추와 마늘·참기름을 넣어 만든 경상도 식 막장에 찍어 먹는 맛이 일품이다. 도다리 뼈를 넣어 끓여낸 미역국은 고기나 멸치로 육수를 낸 것과는 다른 깊은 맛이 난다. 더 진한 바다의 맛이다. 처음엔 별다른 밑반찬이 없어서 다소 실망하지만 이내 불필요한 걱정이었다는 점을 알게 된다. 활어회 본연의 맛을 느끼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음식만 내온다는 횟집 사장님의 철학이 녹아있다.
■ 16시~17시30분 : 광안리 해변에서 즐기는 망중한
파란 하늘과 바다를 배경으로 식사를 마치고 회센터 앞 광안리 해변에 발 도장을 찍었다. 6월 초지만 후텁지근한 날씨 덕분인지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이 몇 있었다. 멀리 보이는 광안대교와 바다가 어우러져 아무렇게나 셔터를 눌러도 여행엽서로 손색없는 컷이 나왔다. 일광욕을 즐기는 외국인부터 비치발리볼을 즐기는 20대 청년들까지 저마다의 여유로움을 만끽하고 있다. 몰디브 해변에서나 볼법한 짚으로 엮은 파라솔이 해안을 따라 설치돼 있다. 태국에서 여행을 왔다는 한 연인은 맨발로 한적한 모래사장을 거닐고 앳된 여중생 여섯 명은 점프샷 찍기에 여념이 없다. 한가로운 오후, 여름이 더 성큼 다가오기 전에 찾아 색다른 매력을 뽐내는 광안리에서 모처럼 망중한을 즐겼다. 그늘이 드리운 나무 아래서 한적한 부산 바다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머릿속 잡생각이 씻겨나갔다.
■ 17시 30분~19시 : BIFF 거리서 국제시장·깡통시장 잇는 부산 명물 먹거리 탐방
두 눈에 충분히 바다를 담아냈다면 부산을 대표하는 시장골목으로 떠날 시간이다. 차로 30분 거리에 부평동 먹자골목이 있다. 지하철로는 자갈치 시장역 7번 출구를 찾으면 된다. BIFF 거리에서 시작해 깡통시장, 국제시장 골목골목을 돌아보는 코스다. 영화감독 김기덕, 뤽 배송의 핸드 프린팅을 발밑에 두고 바라본 BIFF 입구는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과 삼삼오오 짝지어 나온 사람들로 붐볐다. 제일 먼저 눈에 띈 건 즉석에서 만든 고소한 씨앗호떡을 맛보려 늘어선 긴 줄이다. 아저씨가 반죽에 설탕을 넣고 기름에 바삭하게 구워내면 아주머니가 호떡 끝을 가위로 가르고 해바라기씨, 호박씨를 가득 담아낸다. 한입 크게 베어 무니 쫄깃한 식감에 고소하고 달콤한 맛이 이어졌다. 씹을 때마다 입안에서 씨앗이 톡톡 터지는 재미가 색다르다.
바로 옆 포장마차엔 짭짤한 어묵 국물에 몸을 담근 가래떡이 있었다. 구워 먹는 가래떡이나 떡국에 든 것과는 또 다른 맛이다. 푹 익어 겉은 부드럽고 속은 쫀득하다. 간이 삼삼하게 배어있어 배가 불러도 여러 개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물떡 또는 떡오뎅이라고 불리는 데 익숙하면서도 낯선 맛이다.
BIFF 거리를 따라 깡통시장 어귀로 들어섰다. 장을 보러 나온 주민들이 꽤 많다. 열 명 중 두 명은 시장바구니를 손에 든 주부들이다. 앞뒤로 보폭을 맞춰 시장 안쪽으로 들어가니 정겨운 풍경이 펼쳐진다. ‘후루룩 후루룩’ 삶은 당면에 양념장, 김치, 시금치, 단무지 등을 넣어 비벼 먹는 비빔당면 집 좌판에서 나는 소리다. 새콤달콤한 맛이 입맛을 당긴다.
부산 별미 목록에 돼지국밥, 밀면이 빠지면 서운하다. 돼지 뼈를 푹 고아낸 육수에 항정살이나 삼겹살 덩어리를 넣어 우려낸 진한 국물 한 입에 속이 풀린다. 꼬들꼬들한 면발과 깔끔한 육수를 함께 맛보고 싶은 사람에게는 밀면이 제격이다.
다양한 수제 어묵을 취향대로 골라 먹을 수 있는 곳도 부산이다. 갓 튀겨낸 어묵들은 진열되기 무섭게 팔려 나간다. 큼지막한 전복이 두어 개씩 올라간 것부터 통새우와 함께 튀긴 것까지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종류가 다양하다. 어묵을 넣은 고로케도 별미다.
배가 불러 더는 못 먹겠더라도 시장골목은 꼭 가보자.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점포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쏠쏠하다.
■ 19시~20시 : 아날로그 감성이 묻어나는 보수동 책방골목
입으로 한번 눈으로 또 한번 부산 별미를 전부 섭렵했다면 이제 ‘허기진 감성’을 채울 시간이다. 시장 골목 끝에 보수동 책방골목으로 가보자. 주변에서 어느새 자취를 감춘 헌책방이 작은 골목에 빼곡히 들어차 있다. 이곳에선 시간이 느리게 간다. 손때 묻은 책들이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동심으로 돌아가 소풍날 보물 찾기 하는 기분이 든다. ‘이 책을 보던 아이는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색바랜 책 속에 바래지 않는 추억이 깃들어 있다.
■ 20시~22시45분 : 아쉬움 안고 다시 일상으로…
아쉽지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이 찾아왔다. 어스름이 내린 부산역은 아침과는 또 다른 모습이다. 하루로는 아쉬움이 채 가시지 않기 때문일까. 다리 아픈 줄 모르고 돌아본 부산에서의 하루가 이렇게 저물었다.
/부산=김나영기자 iluvny23@sedaily.com
사진=이종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