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백상논단] 이 나라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조장옥 한국경제학회장·서강대 경제학부 교수

나치 '통제경제' 혁파한 독일

재화 풍성해지고 GDP 급성장

한국도 경제학계 제언 따라

시장원리 입각한 개혁 나서야

조장옥 한국경제학회장조장옥 한국경제학회장


1936년부터 나치정권은 독일의 자본주의 경제를 통제경제로 바꿨다. 이는 야심적인 재무장(rearmament)을 통해 전체주의 국가(totalitarian state)에 필요한 중앙집권적인 체제를 갖추기 위해서였다. 나치정권 통제정책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가격과 임금은 1936년 가을 수준으로 동결한다. ② 소비재와 식량은 배급제를 따른다. ③ 노동·원자재 및 주요 상품은 중앙에서 배분한다. ④ 농부들은 주어진 식량 쿼터를 의무적으로 공납한다. ⑤ 주택에 관해서는 엄격한 규제를 실시한다. 이와 같은 나치의 통제정책은 전시에 효과를 발휘하는 것으로 보였다.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몇 년 동안 독일 국민은 이러한 체제 때문에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식량과 연료가 부족한 것은 물론이고 전시에 통화를 찍어 썼기 때문에 극심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당시 독일의 공식 화폐인 라이히스마르크는 교환의 매개수단으로 사용되지 못하고 있었다. 당연히 암시장이 형성됐으며 암시장에서의 교환의 매개수단은 담배였다. 그나마 암시장의 거래는 큰 역할을 못했고 대부분의 재화는 시장에 나오지 않고 퇴장됐다. 가격이 통제되고 있는 시장에서 가치가 없는 공식화폐를 받고 재화를 공급할 공급자는 당연히 없었던 것이다.


1948년 6월20일에 미국과 영국의 점령지역(bizone)에서 화폐개혁이 단행됐다. 라이히스마르크를 도이치 마르크(DM)로 대체하고 화폐공급을 크게 감소시켰으며 새 통화인 도이치 마르크를 보호하기 위해 ① 중앙은행을 설치해 독립적으로 통화를 발행하는 권한을 주고 ② 정부의 과도한 재정적자를 금했다. 화폐개혁을 단행한 직후 영국과 미국 점령지 의회에서 다수당을 차지하고 있던 루트비히 에르하르트는 중앙계획체제를 폐지하고 시장경제를 재도입하는 조치를 취했다. 대부분의 공산품과 일부 식량의 가격통제를 해제하고 재화의 배급제를 폐지했다. 자원의 배분도 시장에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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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의 효과는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영국과 미국 점령지에서는 하루아침에 물물교환이 화폐경제로 바뀌었다. 재화와 노동의 대가로 새 통화인 도이치 마르크가 사용되고 상점에는 전에 없던 재화들이 넘쳐나게 됐다. 암시장은 사라졌다. 쇼윈도에 갑자기 등장한 풍부한 재화는 드디어 새로운 시대가 시작됐다는 심리적인 효과를 사람들에게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개혁은 심리적인 효과만 초래한 것이 아니었다. 생산도 급격히 증가했다. 1948년 서독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16% 이상으로 치솟은 것은 이와 같은 개혁의 결과였던 것이다. 특히 가격통제가 사라진 제조업의 생산이 급격히 증가했다. 라인 강의 기적이 시작된 것이다.

2차 대전 이후 독일의 개혁은 경제성장과 생활 수준의 향상을 위해 경쟁과 그에 바탕을 둔 시장경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주고 있다. 우리 모두 두고두고 기억해야 할 것은 경제의 원리는 준엄하다는 사실이다. 일반 시장참가자나 기업가·정치인·관료 모두 경제 원리의 준엄함을 인식하고 시장경제의 원리에 충실할 때 가장 높은 생활 수준이 달성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지도자들은 누구도 이와 같은 경제학자의 충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경제학자는 대권놀음의 장식품에 불과하고 그들의 충고는 개밥에 도토리 정도다. 개혁을 외쳐도 돌아오는 것은 공허한 메아리뿐이다. 이 나라는 선진국으로서의 제도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제언을 언제까지 무시할 것인가. 이 나라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조장옥 한국경제학회장·서강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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