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로 여는 수요일] 선운사 풍천장어집

김사인 作



김씨는 촘촘히 잘도 묶은 싸리비와 부삽으로

오늘도 가게 안팎을 정갈하니 쓸고


손님을 기다린다.

새 남방을 입고 가게 앞 의자에 앉은 김씨가

고요하고 환하다.

누가 보거나 말거나

오두마니 자리를 지킨다는 것

누가 알든 모르든

이십년 삼십년을 거기 있는다는 것

우주의 한 귀퉁이를

얼마나 잘 지키는 일인가.


부처님의 직무를 얼마나 잘 도와드리는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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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들이 그렇듯이

달과 별들이 그렇듯이.

풍천장어는 오늘도 팔자를 그리며 미끄러진다. 몽당비 지느러미로 수족관 법당을 정갈하게 쓸고 손님을 기다린다. 단벌 먹물옷 입고 바닥에 누운 장어가 고요하고 환하다. 어떤 허기와 어떤 군침이 오든 오두마니 기다린다. 뜰채가 들어오면 최선을 다해 사양하지만 어떤 목숨도 인드라의 그물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겸허히 증명해 보인다. 장어는 김씨의 금고에 지폐를 몇 장 넣어주고, 손님의 원기와 눈빛이 되어 장어집을 나선다. 우주의 한 귀퉁이가 얼마나 든든한 일인가.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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