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이 8일 20대 국회의 법제사법위원장과 운영위원장을 사수하는 대신 국회의장을 더불어민주당에 양보하겠다고 전격 제안했다. 이에 따라 법정 시한을 어긴 ‘위법부’라는 비판 여론을 감내해야 했던 여야는 첫 번째 고비를 넘고 상임위원장 배분에 주력할 수 있게 되면서 20대 국회 원 구성도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여야는 원 구성 문제의 돌파구를 좀처럼 찾지 못하는 듯 보였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야당이 수적 우위의 이점만을 활용해 밀어붙이기식으로 국회를 운영하는 것은 올바른 출발이 아니다”라며 “원만한 타협에 도달할 때까지 대화를 지속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국민의당이 제안한 ‘의장 자율투표’에 대해 전날에 이어 다시 한번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에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무책임한 집권당 때문에 진흙탕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무력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이 같은 분위기는 새누리당이 국회의장을 사수할 경우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던 서청원 의원이 포기 의사를 밝히면서 반전됐다. 서청원 의원은 이날 국가미래전략포럼 창립총회에 참석해 “야당이 국회의장을 달라고 하면 줘라. 8선 선배로서 원 구성 (시한은) 놓치면 안 된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의장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 발언이 나온 지 약 한 시간 후 정진석 원내대표는 예정에 없던 기자회견을 열고 “서 의원의 용단에 따라 의장을 야당에 양보하기로 결정했다”고 공식화했다. 그러면서 “법사위와 운영위는 의장을 맡지 않는 당이 가져가는 것으로 의견 조율이 돼 있는 상태”라며 “기획재정위원회·정무위원회·예산결산특별위원회 중 하나는 야당에 할애할 생각”이라고 전했다. 더민주의 한 고위관계자는 서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새누리당이 기재위를 내놓겠느냐, 정무위를 내주겠느냐”며 “더민주가 예결위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더민주가 의장을 맡는 것으로 조율이 이뤄지면서 20대 국회의 첫 의장으로는 정세균·문희상·이석현·박병석 의원 등이 거론된다.
새누리당이 이처럼 갑자기 입장을 선회한 배경을 놓고 다양한 해석이 제기된다. 우선 이날 참모진 인사를 단행한 청와대가 직접 나서 여권 내부의 교통정리를 주도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4·13 총선에서 나타난 민심에 부응하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의장을 내주는 대신 법사위·운영위 같은 상임위를 사수해 실리를 도모하려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청와대가 서청원 의원이 아닌 다른 친박 핵심을 국회의장으로 추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서 의원이 ‘낀박’인 정진석 원내대표와 손을 잡고 ‘국회의장 사수’ 입장을 고수한 청와대에 반기를 든 것이라는 추측도 제기된다.
한편 여야 3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 모처에서 비공개 회동을 갖고 추가 협상을 이어갔다.
/나윤석·류호·박효정기자 nagij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