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강남역 인근에서 한 남성이 여성을 살해하는 일이 벌어졌다. 경찰은 정신병 전력이 있는 가해자의 ‘묻지마 살인’으로 결론을 내렸지만, 사건의 종결과는 상관없이 이 사건은 우리 사회에 ‘성별 갈등’이라는 크나큰 화두를 던졌다.
그 중심에는 여성에 대한 혐오를 일컫는 ‘여혐’이 자리하고 있다. 피해자에 대한 이례적인 추모 열풍의 이면에는 이번 사건을 단순한 살인 사건이 아닌 ‘여혐’의 사회 분위기 속에서 이뤄진 범죄 행위라는 인식이 존재한다.
추모 과정 속에서 ‘여혐’에 대한 반대 분위기가 자칫 남성혐오로 변질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이들까지 추모 현장에 나타나면서 젠더 감정은 극으로 치달았다.
‘된장녀’, ‘김치녀’ 등 여성을 비하하는 용어가 일상화하고, 실제 성별 충돌까지 발생하면서 ‘여혐’이란 단어는 우리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한번쯤 생각해 봐야 하는 문제가 됐다.
‘젠더 감정 정치’는 여성을 지칭하는 대명사처럼 사용되는 ‘여혐’이란 단어가 왜 생겼는지부터 근원부터 살핀다. 그러면서 ‘여혐’을 비롯해 여성이 부당하게 받는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나타난 시대 정신인 페미니즘을 거론하고, 지금의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엔 어떤 것들이 있는지 탐색해 나간다.
저자는 “이 책은, 유표적 지시어가 없이 단지 여성이라는 것만으로도 죽음을 당하기에 충분한 이유가 되는 작금의 세상 읽기이자 이에 대한 문제 제기이며 또 다른 출구에 관한 상상”이라고 말했다. 책에 따르면 2008년 금융위기 이래, 상시적 고용불안과 살인적 경쟁으로 인한 경제적 공황이 심리적 공황으로 드러난 것이 여성혐오다. 글로벌 양극화가 초래한 경제적 공포와 불안, 계층상승의 좌절로 인한 분노와 공격성이 자기파괴로 치닫지 않고 바깥으로 드러난 것이 바로 ‘여혐’이라는 주장이다. 다시 말해 ‘여혐’은 단순히 부적절한 행동을 하는 일부 여성에 대한 반감 때문이 아니라 사회 구조적인 문제가 여성에 대한 감정을 안 좋게 만든 탓에 비롯된 사회정서라는 설명이다.
문제는 이런 식으로 표출된 여성에 대한 반감이 앞으로 더욱 커질 경우 젠더 갈등이 사회의 안정마저 뿌리째 뒤흔드는 불안 요소가 될 수 있다는 데 있다. 다만 저자는 남녀 간에 반목하는 지금의 분위기가 고정불변의 상황은 아닐 수 있다고 말한다. 여성에 대한 혐오, 이에 대응한 남성혐오의 본질은 감정이기 때문이다. 감정은 예측 불가능하며, 어떤 계기에 의해 변할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믿음이다. 특히 감정은 이와 같은 곤경의 해소 가능성을 담보하는 매개로 기능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감정은 고정된 좌표를 갖는 것이 아니라 몸들 사이를 흘러다니는 강렬한 만남이자 힘들의 흐름”이라고 말하면서 감정의 다양한 면을 관찰한다. 실제로 여혐에 대한 감정 표출이 심해질수록 여성의 전유물이라 여겨졌던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남성들도 늘어나고 있다는 점 등을 거론한다.
저자는 페미니스트이지만, 그렇다고 페미니즘 자체가 여성에 대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는 “혐오에서 인류애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인간을 존중할 수 있는 교육인 인문학이 필수”라고 말한다. 아울러 페미니즘이 당파적인 젠더의 이해관계를 초월해 인문학과 동맹을 맺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강조한다. 2만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