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시각] 쿠바,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





북한의 형제국가로 꼽히는 쿠바를 윤병세 장관이 우리 외교부 장관으로는 최초로 이달 초 방문했다. 쿠바에서 열린 ‘카리브국가연합(ACS)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브루노 로드리게스 쿠바 외교장관과 사상 첫 양자회담까지 했다. 이 자리에서 미수교국인 양국의 관계 정상화 논의를 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와 관련해 외교부는 쿠바와 북한의 특수한 관계를 감안할 때 섣부른 비약은 자제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외교부 당국자들도 쿠바와 관련해서는 몸을 사리며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다. 언론에도 과잉 해석을 삼가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라며 보도 자제를 요청할 정도다.


하지만 윤 장관의 최근 언행이 외교부의 입장과 일치하는지는 의문이다. 지난 5일(현지시간) 한·쿠바 외교장관 회담 후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윤 장관은 “(한·쿠바) 양국이 갖고 있는 잠재력을 더욱 구체화할 시점이 다가왔다는 점을 제가 강조했다”면서 국교 정상화 논의의 필요성을 제기했음을 시사했다. 윤 장관은 또 자신의 쿠바 방문을 인류 최초로 닐 암스트롱이 달에 착륙한 것에 비유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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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장관은 10일 언론 인터뷰에서도 쿠바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 “3년 가까운 준비를 해왔다”면서 물밑에서 작업을 지속해왔음을 시사했다. 최근 러시아를 방문한 외교부 고위당국자 역시 한·쿠바 외교장관이 이달 초에 처음 만난 것이 아니며 그동안 공개를 못했을 뿐 전에도 만남이 있었다고 밝혔다. 한·쿠바 간 접촉 자체를 비공개에 부치고 확인해주지 않는 외교부의 스탠스와는 사뭇 다르다.

윤 장관의 이 같은 행보가 쿠바와의 관계 정상화 논의가 어느 정도 무르익었다고 판단한 자신감에서 나온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양국이 최종적으로 공식 발표하기 전까지는 신중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가 누차 언론에 강조해왔듯이 쿠바의 형제국가인 북한의 방해공작이 있을 수 있고 북한을 의식한 쿠바가 언제 마음을 바꿀지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쿠바가 최근 열린 한·쿠바 외교장관 회담의 개최 사실조차 공개하기를 꺼렸던 점이나 지난해 10월 쿠바의 차관급 인사가 언론에 한국과의 수교에 대해 긍정적인 발언을 했다가 경질된 점만 봐도 그렇다.

미국과 쿠바는 2014년 12월 53년 만에 국교를 정상화한다고 전격 선언해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반세기 동안 쿠바를 봉쇄하던 미국이 정책을 전면 수정했음을 알리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이 같은 깜짝 발표가 있기까지 양국은 무려 18개월간 극비리에 걸친 물밑 교섭을 했다. 한국과 쿠바의 관계 정상화 역시 오랜 기간 협의가 필요한 사안일 것이다. 우리 외교부 장관의 쿠바 방문 자체도 큰 의미가 있기는 하나 인류 최초의 달 착륙에 비유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다.

노희영 정치부 차장 nevermind@sedaily.com

노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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