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설] 금리 내렸어도 심해져 가는 ‘돈맥경화’

물가상승률을 고려한 실질금리가 마이너스 수준으로 떨어졌는데도 은행에 돈이 몰리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우리·KEB하나·농협은행 등 5개 은행의 원화예수금 잔액은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1.25%로 인하한 지난 9일 973조6,249억원 수준에서 16일 984조401억원으로 10조4,152억원이나 불어났다. 한은의 금리 인하로 실질금리가 마이너스까지 떨어지면서 은행에서 돈이 빠져나갈 것이라는 일반적 예상과는 정반대의 결과다.


이런 의외의 현상은 불경기 탓에 투자할 자금이 있어도 그냥 은행에 돈을 보관하는 ‘파킹’ 현상이 심화한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은행 요구불예금의 증가세가 두드러진 것이 단적으로 말해준다. 예금주가 원하면 언제든지 지불해야 하는 요구불예금의 금리는 연 0.1% 이하 수준인데도 5대 은행의 요구불예금은 이 기간 7조원 가까이 늘어났다. 금리를 내리고 돈을 풀어도 자금이 돌지 않고 은행 금고에 잠겨 있는 ‘돈맥경화’가 심화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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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 인하 효과의 한계는 이미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명목 국내총생산(GDP)을 시중 통화량(M2)으로 나눈 값인 통화유통속도는 지난해 말 0.71로 연간 기준 역대 최저다. 초저금리 기조에도 올해 1·4분기 총저축률은 36.2%로 지난해 4·4분기보다 1.8%포인트 상승했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투기자금이 서울 강남 아파트에 몰리며 부동산 거품이 만들어지는 부작용마저 나타나고 있다.

돈이 돌지 않고 은행에 쌓이는 것은 향후 경기에 대한 불안감이 크기 때문이다. 통화정책뿐 아니라 재정정책과 구조개혁을 제대로 추진해 경제정책의 신뢰를 높여야 시중 자금이 소비와 투자로 흘러들어 가는 선순환이 이뤄질 수 있다. 정부에서 검토하고 있는 추가경정예산도 꼭 필요하다면 편성의 목적을 명확히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단순히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나 공공근로 등 임시 일자리 늘리기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재정투입 효과가 확실하도록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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