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열흘넘게 '유동성 확보' 침묵에도…한진만 쳐다보는 채권단·당국

[한진해운 정상화 방안 여전히 안갯속]

내달 중순까지 한진해운 해법 내놔야 후속조치 가능

"채권단이 세부내용 압박할수도 없고…" 답답함 토로

일각선 "한진칼이 핵심 자금줄 역할 맡을 것" 분석



금융당국과 채권단이 위기에 처한 한진해운의 경영정상화 문제에 대해 한진그룹만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내년 말까지 한진해운이 필요한 1조~1조2,000억원의 유동성을 그룹이 자체적으로 마련해달라고 요구했지만 한진그룹은 여전히 묵묵부답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강하게 압박할 수도, 마냥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채권단의 한 고위 관계자는 “한진그룹의 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채권단이 무슨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다”라면서 “답답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만, 채권단 내부적으로 한진그룹 측에서 제시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에 대한 사전 검토 작업은 진행하고 있다. 대한항공 대신 한진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한진칼이 구원투수로 나설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장고하고 있는 한진그룹=지난 8일 한진그룹 측은 한진해운의 주채권은행인 KDB산업은행 관계자를 만나 “4,000억원 정도는 마련할 수 있다. 나머지는 채권단에서 지원해줄 수 있느냐”는 의견을 구두로 전달했다. 채권단은 즉각 불가 방침을 밝혔고 이후 열흘 넘게 한진그룹의 유동성 문제 해결과 관련해 양측 간 논의가 진전되지 않고 있다. 채권단 고위 관계자는 “한진그룹에서 뭐라도 들고 와야 채권단과 대화라도 할 수 있을 텐데 아직 움직임이 없다”며 “그렇다고 채권단이 먼저 나서서 한진그룹 측에 세부적인 내용을 요구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유동성 문제 해결과 관련해 한진그룹 측의 지원 방안 제시 기한을 못 박지는 않았지만 이달 중으로는 채권단과 한진그룹 간 대화가 상당 부분 진척돼야 한다는 게 채권단의 입장이다. 5월 초 조건부 자율협약을 체결하면서 채권단은 한진해운의 채무 만기를 3개월 연장해줬다. 적어도 다음달 중순까지는 유동성 확보 방안에 대한 해법이 도출돼야 만기를 다시 연장하고 자율협약을 위한 후속조치들이 차질없이 진행될 수 있다고 채권단 관계자는 설명했다.


한진해운 경영정상화의 핵심인 용선료 협상의 성패도 유동성 확보 방안에 달려 있다. 금융당국의 한 고위 관계자는 “해외 선주들 입장에서는 용선료를 조정해주면 정말 살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행동에 나설 여지가 생긴다”며 “현대상선이 현대증권 매각 대금을 확실히 손에 쥐고 보여주면서 협상에 성공했듯이 한진해운도 유동성 방안을 제시해야 선주들이 대화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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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칼 구원투수 나설까=한진그룹이 한진해운의 유동성 지원을 마냥 미룰 수 없는 상황. 금융투자업계와 채권단 안팎에서는 결국 한진그룹의 지주사를 맡고 있는 한진칼이 핵심 자금줄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진칼-대한항공-한진해운으로 이어지는 그룹 지배구조상 한진칼과 대한항공이 한진해운에 대한 지원 후보로 거론되지만 당장 부채비율이 918%에 달하는 대한항공은 여력이 없다. 지분과 영구채, 전환사채 등 한진해운에 대한 대한항공의 손실 위험액도 5,000억원가량 된다.

반면 한진칼은 지난 1·4분기 기준 부채비율이 73%에 불과해 자금을 더 끌어다 쓸 여력이 있고 담보도 충분하다. 한진칼의 핵심 자회사인 대한항공과 ㈜한진 지분을 매각하거나 담보로 제공하는 것은 쉽지 않겠지만 칼호텔네트워크를 비롯한 비상장 기업들은 활용할 여지가 있다. 특히 저가항공사인 진에어 주식이 한진칼이 활용할 수 있는 핵심 카드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진칼이 보유한 진에어 지분 100%의 장부가는 22억원에 불과하지만 증시에 상장하면 단위 자체가 달라진다. 저가항공업계 1위인 제주항공은 지난해 11월 상장 당시 448.5대1의 공모주 청약 경쟁률을 기록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공모가 기준 제주항공의 시가총액은 7,772억원, 현재 주가 기준으로는 8,666억원에 달한다. 시장에서는 아직 비상장 상태지만 한진칼이 저가항공업계 2~3위 항공사인 진에어 주식 일부를 담보로 제공하면 금융권에서 충분한 자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관측한다.

이밖에 칼네트워크·정석기업 등 다른 자회사들 지분을 일부 매각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채권단 역시 유동성 확보 방안만 확실하면 단기적으로 필요 자금을 지원하는 ‘브리지론’을 활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현대상선이 현대증권 매각을 앞두고 채권단으로부터 브리지론을 받은 사례도 있다.

/조민규기자 세종=구경우기자 cmk25@sedaily.com

조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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