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대통령의 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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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민주당 상원의원이 공화당의 존 매케인 상원의원과 미국 대통령 자리를 놓고 치열한 선거전을 펼치던 2008년. 등을 의자에 기댄 채 책상 위에 발을 올리고 전화 인터뷰를 하고 있던 오바마의 구두가 타임지 사진 기자 칼리 셸의 눈에 들어왔다. 얼마나 돌아다녔는지 양쪽 밑창이 다 닳아 구멍까지 난 구두. 대중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던 이 모습을 찍기 위해 셸은 주저 없이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이렇게 탄생한 ‘오바마의 헤진 구두’ 사진은 선거 막판 터진 세라 페일린 공화당 부통령 후보의 억대 호화의상 논란과 확연히 대비되며 그에게 몰표를 안겨줬다. 대통령 취임 후 오바마가 이 구두를 ‘행운의 구두’라 부르며 끝까지 버리지 않았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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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구두는 신분의 상징이었다. 특히 빨간색 구두는 강렬한 느낌 외에도 안료의 희소성 탓에 아무나 신을 수 없는 특권이 됐다. 고대 로마 시대의 폭군 네로 황제가 신었던 ‘물레우스 칼세우스(Mulleus Calceus)’나 요한 바오로 2세 이전 교황들의 신발이 붉은색이었던 이유다. 하지만 붉은 안료가 대중화되면서 구두도 특권을 벗고 신는 자의 인생을 대변하기 시작했다. 프란치스코 현 교황의 검은색 신발은 약하고 없는 자들을 향한 구원의 기도였고 에이브러햄 링컨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자신의 구두를 직접 닦은 것은 국민을 향한 권력자의 마음가짐이었다.

1970~2000년대 초 국내 최고 인기 제화 브랜드 중 하나였던 에스콰이아가 다른 업체로 넘어가 이름을 바꾼 지 1년이 지났다. 이 제화업체에서 만든 제품 중에는 역대 다섯 명의 대통령들을 위해 만들었던 구두들도 포함돼 있다. 과연 전임 대통령들은 그 구두에 어떤 인생의 교훈을 남겼을까. 박근혜 대통령이 올해 대구 서문시장에서 샀던 그 검은색 신발은 앞으로 어떤 흔적을 새겨 넣을까. 대통령의 신발들이 공개된다면 우리가 오바마의 헤진 구두를 잊을 수 있을지 그것이 궁금하다. /송영규 논설위원

송영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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