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개월여 동안 영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뜨거운 찬반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Brexit) 투표가 23일 오후7시(한국시각 오후3시) 시작됐다. 15시간 동안 진행되는 투표는 오후10시 막을 내리며 이튿날 오전7시(한국시각 오후3시) 브렉시트냐 브리메인(영국의 EU 잔류, Bremain)이냐 여부가 판가름난다.
투표 결과 브렉시트로 결정되면 섬나라 영국은 유럽에서 이탈하면서 ‘하나의 유럽’을 기치로 내건 EU 체제는 붕괴위기를 맞고 유럽을 포함한 글로벌 정치·경제 체제는 격랑에 휩싸일 것으로 전망된다. ‘브리메인’으로 결론 나더라도 여진은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눈앞의 리스크는 가라앉겠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잠잠해진 ‘고립주의’ 내지 ‘자국 중심주의’가 브렉시트 캠페인 과정에서 영국은 물론 유럽인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됐기 때문이다.
●브렉시트땐 자산가치 뚝
파운드화 20% 폭락 예상
獨·네덜란드·아일랜드 등
투자 손실에 수출 치명타
최악 땐 은행시스템 붕괴
◇‘브렉시트’ 시 파운드발 자산폭락 불가피=브렉시트가 현실화하면 단기적으로 가장 우려되는 것은 이른바 ‘환율 효과’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2일 “경제전문가들은 브렉시트 시 파운드화 가치가 최소 20% 이상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파운드화 급락은 영국 자산에 투자한 정부·기업·개인에 막대한 손실을 입히게 된다. 대표적인 나라가 네덜란드다. 네덜란드 정부와 민간은 영국에 약 2,300억파운드(약 392조원)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네덜란드 경제규모의 3분의1에 해당하는 규모다. 브렉시트로 파운드화 가치가 20% 떨어지면 네덜란드는 한순간에 460억파운드를 허공에 날리게 된다.
브렉시트로 영국 경제가 침체에 빠지면 영국과의 교역규모가 큰 유럽 각국도 동반 침체를 겪을 수 있다. 주요 피해국으로는 독일·아일랜드·몰타가 꼽힌다. 독일은 대영국 수출규모가 세계에서 가장 많으며 아일랜드와 몰타는 고용의 상당 부분이 영국에서 발생하는 등 영국 의존도가 높은 국가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금융 시스템 붕괴다. EU 내 상위 11개국의 은행들은 영국에 1조3,000억파운드어치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브렉시트로 파운드화 가치가 붕괴하면 이들 은행은 자산가치 폭락으로 거대한 손실을 입게 되고 이는 은행의 금융중개 기능을 악화시켜 ‘돈맥경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FT는 “은행 시스템이 붕괴될 경우 지난 2012년의 그리스 위기는 소소한 것이라고 느끼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파급 효과는 대서양을 건너 일본·중국 등 아시아 주요국까지도 미칠 수 있다. 안전자산 선호로 엔화 수요가 늘면서 엔저를 통해 경기회복을 노리는 아베노믹스에 치명타를 가할 수 있다.
●브리메인도 여진 만만찮아
伊·佛 등 극우세력 힘받아
‘EU 회의론’ 상시 리스크
반이민 정서도 이미 확산
유럽 각국 사분오열 우려
◇‘브리메인’도 상처는 남아 … EU 회의론 상시 리스크될 듯=영국이 EU 잔류를 선택하더라도 이는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브렉시트 캠페인은 유럽 각국의 극우정당에 세를 불릴 기회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이미 이탈리아 신생정당 ‘오성운동’과 프랑스 극우정당 국민전선(FN)은 니알 이렉시트(이탈리아의 EU 탈퇴)와 프렉시트(프랑스의 EU 탈퇴)를 촉구하며 지지자를 결집하고 있다. 오성운동의 차기 지도자로 거론되는 루이지 디마이오 하원 부대표는 이날 방송에 출연해 “오늘날 존재하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며 “제2의 유로존이나 대체통화와 같은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이민 정서에 힘입어 약진을 거듭하고 있는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 대표는 “나라면 브렉시트에 투표할 것”이라며 “프랑스는 영국보다 EU를 떠날 이유가 1,000개는 더 있다”고 말했다. 이미 유럽에서 목소리가 커진 반이민·보호무역주의 정서는 오히려 브렉시트 투표 이후 유럽사회를 더 강하게 뒤흔들 가능성이 크다. 런던정경대(LSE)는 “결과에 관계없이 투표 후 극우성향 영국 독립당이 부상할 것”이라고 전망했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투표 이후 유럽 각국의 정치권이 사분오열되면서 26일 재총선을 치르는 스페인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능현·변재현기자 nhkimch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