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점을 뒤지고 있는 9회말 투아웃 상황에서 만루 홈런을 쳤다.”
23일 현대상선(011200)이 세계 최대의 해운 얼라이언스인 2M과 가입 협상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을 밝히자 업계 관계자가 내놓은 평가다.
KDB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지난 3월29일 현대상선에 채무상환을 3개월 유예하는 대신 △용선료 인하 △사채권자 채무재조정 △글로벌 해운동맹(얼라이언스) 가입 등 세 가지 조건을 완수해야 자율협약에 들어갈 수 있다고 못 박았다. 이에 현대상선은 이달 2일 사채권자 채무재조정에 성공한 후 10일 해외 선주들에게 용선료 인하 협상까지 마무리하며 조건부 자율협약으로 가는 9부 능선을 넘었다.
하지만 마지막 관문인 해운동맹 가입은 최근까지 실마리를 찾기 힘들었다. 현대상선은 5월 ‘디(THE)얼라이언스’의 초기 멤버에 포함되지 못하면서 내년 4개(2M·오션3·G6·CKYHE)에서 3개(2M·오션·디얼라이언스)로 개편될 글로벌 해운동맹에서 탈락할 처지에 있었다. 다급해진 현대상선은 현재 속한 G6 멤버인 독일 하파그로이드와 일본 NYK가 주축이 돼 만든 디얼라이언스의 추가 가입을 위해 여러 번 문을 두드렸지만 묵묵부답이었다. 이 같은 분위기는 조건부 자율협약의 마감일을 6일 앞둔 22일 오전까지 이어졌다.
현대상선은 이러한 상황을 ‘플랜B’로 돌파했다. 현대상선은 지난달 12일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한 대비책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G6 회원사인 하파그로이드와 일본 NYK가 디얼라이언스 결성을 발표한(5월13일) 전날에서야 한진해운(117930)의 손을 잡았다고 알려온 직후였다. 수년간 같은 동맹 소속으로 활동해왔던 이들 선사가 돌아서자 현대상선은 독자생존을 계획했다. 현대상선의 한 관계자는 “디얼라이언스에서 탈락한 후 바로 대비책을 마련했고 2M과 오션얼라이언스에 접촉을 시도하고 답변을 기다렸다”고 전했다.
2M에서 연락이 온 시점은 현대상선이 용선료 인하 협상을 성공한 이달 10일 전후로 알려졌다. 현대상선 회생에 대한 정부의 의지를 확인한 2M 소속사 머스크가 얼라이언스 가입을 논의하자는 의사를 전달했다. 극동·미주 노선의 점유율이 낮은 2M이 이 시장의 약 4%를 차지하고 있는 현대상선과 ‘윈윈’ 하겠다는 제안이었다. 이후 현대상선은 2M·디얼라이언스 양쪽과 줄다리기를 해가며 추가 가입을 조율했고 22일 2M과 함께하기로 잠정 합의했다. 채권단 관계자는 “디얼라이언스 가입에 긍정적이던 하파그로이드와 NYK마저 최근 입장을 바꾸자 현대상선은 2M에 합류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2M 가입으로 채권단이 제시한 3대 조건을 사실상 완수하면서 현대상선의 경영정상화 작업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다음달 18일로 예정된 유상증자에서 채권단과 사채권자·용선주들이 현대상선에 대한 채권을 주식으로 바꾸는 출자전환을 단행한다. 출자전환이 이뤄지면 현재 5,300%에 달하는 현대상선의 부채비율은 200%대로 낮아져 정부가 조성한 선박펀드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현대상선은 선박펀드를 통해 1만3,000~1만4,000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급 초대형 선박을 발주해 경쟁력을 키운다는 목표를 세웠다.
현대상선의 2M 합류로 줄어들던 부산항의 환적 물량도 회복할 가능성이 커졌다. 부산항은 미국 환적 물량은 3개월, 유럽 환적 물량은 8개월 연속 감소하고 있다. 양창호 인천대 동북아물류대학원 교수는 “2M과 현대상선의 합종연횡은 파나마 운하 확장 개통을 대비해 미국 동부 해안 서비스를 늘리려는 전략적인 선택”이라며 “미주 물동량은 앞으로 개선세를 보일 가능성이 높고 유럽 물동량은 글로벌 경기가 어느 정도 살아나야 증가할 것”이라고 전했다./세종=구경우기자 조민규기자 bluesquar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