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전주 소재 화학섬유기업 휴비스(옛 삼양사)에서 근무하는 김계수(54)씨는 직업과 축구 사이에서 선택의 갈림길에 섰던 당시를 기억한다. “지난 2001년 프로축구 전임 심판 자격을 얻으면서 공장 업무를 그만둬야겠다고 인사담당 임원께 말씀드렸죠. 그랬더니 임원은 ‘회사·심판에 모두 충실하라’며 사정을 봐줄 테니 사직하지 말라고 하더군요.” 꿈을 좇으려는 자신에 대한 회사의 파격적인 배려였다고 김씨는 말했다.
최근 전주에서 기자와 만난 김씨는 1982년부터 30년 넘게 휴비스에서 기계설비 관리사원으로 일해왔다. 동시에 그는 2012년까지 월드컵부터 아시아챔피언스리그(AFL)까지 세계를 종횡무진하는 국제 프로축구 심판으로 활동한 경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젊은 시절 못내 성공하지 못한 축구선수의 꿈을 심판을 통해 이룬 것이다.
“바쁠 때는 한 달에도 며칠씩 업무를 빠져야 하는 심판의 사정을 이해해준 회사와 지역 사회의 도움으로 일도 축구도 잡을 수 있었다”고 김씨는 말했다. 축구가 좋아 1992년 축구 심판에 입문한 김씨는 1999년 국제심판 자격을 땄다. 2001년부터는 프로축구 K리그 전임 심판도 담당했다.
휴비스는 회사 업무와 축구 경기를 동시에 소화하느라 매년 일정 기간 자리를 비워야했던 한 사원의 사정을 통 크게 배려해줬다. 삼양사가 SK케미칼과의 합작으로 휴비스를 출범시킨 후에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에도 배려는 계속됐다. 김씨는 “가장 바빴던 2005~2007년에는 해외에서 경기를 치르고 금요일에 한국으로 돌아와 일요일에 K리그 경기 심판을 맡고 월요일에 출근하는 일상이 이어졌다”고 기억했다.
연령 제한 때문에 2012년 7월 축구 심판에서 은퇴한 김씨는 요즘 전북 지역 아마추어 축구경기나 회사 임직원 간 축구경기에서 심판을 본다. 국제심판보다 휴비스 사원 직함에 더 익숙한 근로자의 삶이다. 그는 “휴비스에서 근무하며 가정을 꾸렸고 축구 심판으로의 꿈도 이룬 나는 행운아”라며 “이제는 모든 것을 지원해준 회사에 전념할 때가 아닌가 싶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전주=이종혁기자 2juzs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