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머런 “결정 수용돼야”에도
보건장관 “탈퇴조약 발동 안돼
EU와 국경통제권 협상보장땐
국민투표 가능할 것” 주장
투표 결과 무시·탈퇴통보 않기
구체 대안 내놓는 전문가도 등장
노동당도 책임공방에 분당 위기
사태 수습은커녕 혼돈속으로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 결정을 후회하는 여론이 들끓으며 영국 정치판을 혼돈으로 몰아가고 있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거듭 “재투표는 없다”고 강조했지만 보수당 내각에서조차 재투표 가능성을 시사하는 목소리가 나왔고 구체적인 대안을 거론하는 전문가도 잇따라 등장했다. 이 가운데 캐머런 총리 후임 찾기에 들어간 보수당은 물론 야당인 노동당도 책임공방을 벌이면서 분당 위기를 맞았다. 양당은 브렉시트 결정에 따른 사태수습은커녕 더 큰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려 들어가는 모습이다.
집권 보수당의 제러미 헌트 보건장관은 27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 기고에서 “탈퇴를 위한 리스본조약 50조를 곧바로 발동해서는 안 된다”며 “(리스본조약 50조 발동을 기점으로) 시계가 움직이기 전에 우선 유럽연합(EU)과 협상한 후 그 결과를 영국민 앞에 국민투표 또는 총선공약 형식으로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민자를 자체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국경통제권에 대한 EU와의 새로운 협상이 보장된다면 국민투표가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헌트 장관이 언급한 리스본조약 50조에는 EU를 탈퇴하려는 회원국이 결별을 선언한 시점부터 2년 이내에 EU와의 향후 무역조건 등에 대한 협상을 완료하도록 규정돼 있어 탈퇴 협상이 시작된 날부터 2년이 되면 자동적으로 EU 회원국 자격을 잃게 된다. 보수당 내각에서 이 같은 발언이 나온 것은 처음이다.
‘리그렉시트(브렉시트에 대한 후회, Regrexit)’라는 신조어가 나올 만큼 영국 국민들 사이에 EU 잔류에 대한 열망이 높아졌기 때문에 정치권이 이를 무시하기에는 어려운 상황이다. 영국 현지 언론들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국민투표 결과를 무시하거나 △탈퇴 의사를 EU에 공식적으로 통보하지 않는 법 △스코틀랜드가 거부권을 행사해 실질적으로 EU에 남는 법 등을 거론하며 득실을 따지고 있다.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의 유명 칼럼니스트 기드언 래크먼은 브렉시트가 실제 벌어질 경우 영국과 EU 모두에 너무나 큰 피해가 예상되기 때문에 양측이 결국 타협할 가능성이 크며 재투표가 현실적 방식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보기도 했다.
하지만 EU 주요 회원국과 집행위원회 등은 탈퇴절차 개시 전에 영국과의 협상은 있을 수 없다고 못 박은 만큼 헌트 장관의 주장이 실현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캐머런 총리도 이날 의회에 참석해 “국민투표 결과에 대한 의문은 있을 수 없다”며 “결정은 수용돼야만 한다는 데 내각이 동의했다”고 거듭 밝혔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총리,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는 전날 독일 베를린 회동에서 영국이 리스본조약 50조를 발동하기 전에는 협상을 절대로 시작하지 않겠다고 합의한 상태다.
한편 보수당은 캐머런 총리 후임으로 오는 7월 말까지 당 대표직에 관심을 보인 후보들 가운데 2명을 골라 15만명의 당원투표에 부친 뒤 9월2일 최종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분당 직전의 위기’를 겪고 있는 노동당은 이날 EU 잔류 선거운동에 소극적이었다는 비판을 받은 제러미 코빈 당 대표에 대한 불신임안이 제출됐으나 코빈이 이를 거부해 반대파 의원들과 크게 충돌했다. 또 자신의 축출에 앞장선 힐러리 밴 그림자내각 외무장관을 해임한 코빈 대표의 결정에 반발한 당 지도부 35명이 사임하면서 노동당은 와해 위기에 몰렸다. /이수민기자 noenemy@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