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생태계 교란 '선박평형수'





1532년 168명에 불과한 스페인 군대는 8만명에 이르는 잉카군과 만난다. 결과는 스페인군의 대승. 이 전쟁으로 잉카 황제는 체포되고 제국도 생을 마감한다. 어떻게 수만 명의 대제국이 200명도 안 되는 이방인들에게 무릎을 꿇었을까. 퓰리처상 수상작 ‘총, 균, 쇠’를 쓴 재레드 다이아몬드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UCLA) 교수는 그 이유를 총·균·쇠 세 단어로 요약한다. 스페인 군대가 수적으로 절대 열세였지만 총과 말·쇠칼이 있었다. 반면 황제의 군대에는 돌·청동기·손도끼 뿐이었다.


이보다 더 무서운 무기는 유럽에서 넘어온 바이러스(균)라는 주장도 있다. 고고학계에서는 스페인 침공 당시 중남미 원주민의 90%가 바이러스로 사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잉카·마야·아즈텍 문명도 마찬가지라는 추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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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 간 환경 차이는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큰 위력을 발휘한다. 문명을 사라지게도 하고 생태계도 파괴한다. 바이러스뿐 아니다. 바다를 넘어 유입된 생명체도 마찬가지다. 전 세계가 생태계 균형을 파괴하는 외래종의 유입으로 골머리를 앓는 것도 그래서다.

외래종 유입의 대표적인 매개체가 배의 균형을 잡아주는 ‘선박평형수’다. 2014년 세월호가 침몰한 원인 중 하나도 평형수가 너무 적어 균형을 잃었기 때문이다. 각국 선박들은 화물을 싣고 세계를 누비는데 이 과정에서 연간 100억톤 안팎의 평형수가 다른 나라로 옮겨진다. 홍합류의 일종인 지중해 담치가 우리나라 토종을 몰아내고 남해안 일대를 장악하게 된 것도 유럽이나 미국 등지에서 담겨 와 남해안에서 방출된 평형수가 원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해양 생태계 교란 방지를 위한 ‘선박평형수 관리협약(BWMC)’이 내년부터 발효될 예정이라고 한다. 평형수를 버리기 전에 해양 생물을 말끔히 제거할 수 있도록 처리장치 탑재를 의무화하는 것으로 시장 규모가 향후 5년간 40조원까지 커질 것이라는 예상이다. 골칫덩어리 평형수를 처리하는 기술에 미래 성장동력이 걸려 있는 셈이다. /이용택 논설위원

이용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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