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원전 내 고준위 방폐장 추가설치-찬성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

핵폐기물 임시저장 포화…불가피한 선택

원자력발전소에서 사용하고 남은 핵연료봉 등의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시설을 원전 부지 내에 단기간 추가 설치하자는 정부 안이 나오면서 인근 지역 주민 및 환경단체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을 처리할 곳이 국내에 아직 없어 원전 부지에 임시 보관되고 있지만 그마저도 오는 2019년부터 포화상태가 된다. 산업통상자원부의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에 따르면 각 원전 내 건식 단기저장시설을 설치하고 이를 중간저장시설이 가동되는 2035년까지 활용한다는 방안이다.

정부 안 찬성 측은 현재 핵폐기물 저장공간이 포화되기 전에 중간저장·영구처분시설이 가동되기 전까지는 원전 내 임시로 단기저장시설을 추가로 설치하는 게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반대 측은 현재 방폐장 부지 선정 및 관리에 심각한 문제가 상존하는데도 임시저장시설을 추가로 만드는 것은 편의만을 고려한 임시방편에 불과하고 다음 세대에 위험과 부담을 전가하는 것이라며 반박하고 있다. 양측의 견해를 싣는다.








국내 원전이 운영된 지 40년에 접어들었는데도 쓰고 난 핵연료를 둘 데가 마땅찮다. 원전 부지 내에 임시로 저장하고 있는데 원전별로 시차는 있지만 서서히, 그러나 분명히 포화가 예상된다. 경북 월성원전은 3년 후, 전남 영광 한빛원전은 8년 후로 저장소 시계가 여기저기 째깍거리기 시작했다. 물론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도 상황은 엇비슷하다.

정부는 쌓여만 가는 사용후핵연료 처리를 위해 우선 원전 부지 내 임시저장시설을 확충하겠다는 고육지계를 내놓았다. 핵연료에서 나오는 열을 이용해 전기를 만드는 원자력발전은 사용 후에도 여전히 붕괴열과 방사선이 많이 나와 고준위로 불린다. 장갑이나 신발 등 중저준위 폐기물보다 훨씬 더 위해(危害)해 보관하는 데 고도의 설비와 만반의 안전이 필요하다. 다름 아닌 일본 후쿠시마가 이를 웅변하고 있다. 그러나 임시저장에 관한 한 기술은 이미 확보돼 있다.

영광군 주민은 임시저장이 중간저장·영구저장으로 연장될 것이라는 우려와 함께 소통 없이 만들어진 정부 안을 폐기하겠다고 했다. 경주시 의회는 임시저장시설의 추가 설치는 사용후핵연료 보관시설을 방사성폐기물장 유치지역에 지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을 위반한 것이라고 밝혔다. 경북도 의회도 정부의 기본안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이쯤 되면 한국 원자력계 고질병이 다시 도진 건 분명해 보인다. 계획안에는 불가피할 경우 부지 내에 단기저장시설을 설치한다는 내용과 주민 동의와 안전에 힘쓰겠다는 원론만 있어 어떤 규모로 한시적 시설을 건설한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각론 없이 총론만 가지고 들이대니 답답하기 짝이 없다. 불가피한 상황은 정부가 자초하고 원전은 또다시 걸림돌에 부딪쳤다. 정부는 더 이상 국민 눈치만 살피지 말고 지금이라도 구체적인 청사진을 펼쳐 보이고 민심을 도화지에 녹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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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든 좋든 사용후핵연료 관리는 발전소 해체와 함께 입체적으로 국민과 함께 기획하고, 투명하게 주민과 함께 소통하고, 안전하게 원전과 함께 실행에 옮겨야 한다. 미국 버몬트양키원전은 영구정지 결정이 내려진 뒤 60년 폐로 계획을 세웠다. 우선 습식저장소에 있는 사용후핵연료를 2020년까지 건식저장소로 옮겨 2052년까지 휴면하고 이후 방사능이 떨어지면 곧바로 폐로에 들어간다. 2069년부터 원자로 해체 등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되며 2075년 이후에는 부지 복원이 진행된다. 그러니 우리도 폐로 준비를 위해서라도 일단 지금부터 임시저장소를 넓혀야 하는 것이다.

사용후핵연료를 발전소 내 임시저장 시 물로 사용후핵연료의 붕괴열을 냉각시키고 방사선을 차폐하는 습식은 초기 열이 많이 나올 때는 필수적이다. 건식은 콘크리트나 금속 용기에 넣고 창고에 보관하는 방식으로 공기만으로도 냉각이 가능할 때 적절하다. 월성에서는 습식저장조 내에서 일정 기간 저장해 핵연료에서 나오는 열을 건식저장할 수 있는 수준으로 낮춘 다음 건식저장소로 옮겨 관리하고 있다.



사실 정부가 계획하고 있는 건식저장은 미국 등도 진작 해오고 있던, 말하자면 품질보증 방식이다. 영국과 미국·일본의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고 더욱이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한국 원전 운전과 안전관리 실력을 건식저장에도 응용한다면 주민의 우려나 국민의 심려는 기우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결국 정부는 이 시점에서 진솔하게 국민과 주민에게 양해를 구해야 한다. 기술적·제도적·법적으로도 임시저장이 중간저장·영구저장으로 연장될 수는 없는 것이라는 양심선언과 함께 이제는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

우리 원자력계는 늘 북미를 곁눈질하는데 미국이 그리하지 않고 캐나다도 그리하지 않았으니 한국이 그리하지 못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그러니 국민은 안심해도 된다. 잘못이 있었다면 나무라지만 말고 서로 바로잡자. 북미처럼 북구처럼 공론(空論)이 아닌 공론(公論)을 만들자. 공약(空約)이 아닌 공약(公約)을 하자.

이제 정부도, 지방도, 국민도, 주민도 국가를 위해서 속 빈 강정 같은 주장과 논쟁은 그만하고 서로의 속을 서로가 지은 진정으로 채워보라. 임시저장조를 원전 내에 더 지을 것인지 말 것인지는 왈가왈부의 대상도 갑론을박의 주제도 아니다. 진작 민관이 합심해 건너왔어야 할 징검다리를 이제라도 넘어가자. 네 탓이오 하기 전에 내 탓은 혹여 아니었던지, 반대를 위한 반대는 아니었는지, 지역이기주의는 정말 아니었는지 성찰할 시점이다.

사용후핵연료 관리는 할 것인지 말 것인지의 문제가 아니고 어떻게 할 것이냐로 국론을 모아야 한다. 대한민국 원전의 안전한 퇴로를 위한 사안이다. 본질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고 언제나 안전에 있다. 탁상공론하는 사이 국내 원전은 오늘도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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