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나-인나-”
언제부턴가 엄마 깨우기 기술을 연마한 딸아이가 매주 주말 하루만이라도 늦잠을 자고 싶은 워킹맘의 아침을 엽니다. 비몽사몽 간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쇠한 기력으로 놀이에 동참하면 아기는 어느새 지루하다는 신호를 보내지요. 정열적으로 놀아주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뽀로로’와 ‘코코몽’을 틀어 달라고요.
이렇게 아기와 실랑이를 반복하다 보면 차라리 밖에 나가자는 결론에 다다릅니다. 피곤한 몸과 죄책감을 안고 TV와 하루를 보내느니 외출을 하는 편이 아기도, 엄마 아빠도 낫거든요.
문제는 ‘어디를 갈지’입니다. 햇볕이 너무 쨍쨍하거나 날씨가 좋지 않은 날에는 아기와 나갈 곳이 마땅치 않아요. 요새같이 비와 더위가 반복되는 여름이 특히 문제입니다. 사람이 너무 많거나 조용한 실내공간을 가는 건 주변에 민폐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죠. 키즈카페는 만만하지만,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최근 방문한 서울 용산구의 전쟁기념관은 그런 의미에서 돌을 넘긴 아이와 엄마 아빠가 만족스럽게 다녀올 만한 나들이 장소였습니다.
용산 전쟁기념관을 찾은 날은 흐리고 비가 살짝 떨어지는 날이었습니다. 감기 기운이 있는 아이와 야외활동을 할만한 날씨가 아니었어요. 그래서 실내에서 놀 만한 장소를 급하게 찾다가 이곳을 발견했습니다.
오후 12시쯤 이곳에 도착했는데 주차 공간의 여유는 많지 않았습니다. 웨딩홀과 주차장을 함께 쓰기 때문에 하객들이 몰리는 시간에는 차량이 많거든요. 그래도 운 좋게 한 자리를 발견해 재빨리 차를 집어넣은 뒤 전쟁기념관으로 발걸음을 재촉했어요. 주차요금은 2시간 미만은 2,000원으로 저렴했습니다.
6월인데 전쟁기념관 옆 연못은 예쁜 연꽃들이 피었습니다. 연못 위로 솟아오르는 분수와 비둘기에 시선을 빼앗긴 아기가 ‘우와-’라는 환호성을 지르며 손짓을 하네요. 연못 주변에 있는 벤치에는 햇볕과 비를 가릴 수 있는 천막들이 설치돼 있어 한가로운 오후를 보내기 좋았습니다.
정원에 전시된 전투기와 탱크, 군함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아직 딸아이는 너무 어려 전투기 같은 것에는 흥미를 느끼지 않았지만, 주위의 대여섯 살 난 어린이들은 신나서 내부를 휘젓고 다니더군요. 나이 차이가 나는 두 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이 공간을 더 재미있게 즐겼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원을 지나치니 이날의 주요 목적지인 어린이박물관이 보이네요. 전쟁기념관에는 영유아 관람객들을 위해 따로 어린이박물관이 운영하고 있거든요. 진입로는 어린이들을 위한 장소답게 유모차가 다닐 수 있도록 잘 정비가 돼 있어 힘들지 않게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어린이박물관의 이용시간은 1시간으로 제한이 돼 있습니다. 매시간 적정 인원만 들어갈 수 있게 관리하고 있어요. 훌륭한 시설에 가격까지 무료라는 게 소문이 나서일까요? 주말 붐비는 시간에는 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온라인 예약을 해야 할 때도 있다고 합니다. 저희는 운이 좋게 예약을 하지 않았음에도 바로 입장을 할 수 있었습니다.
어린이박물관에는 유모차는 가지고 들어갈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안내데스크에서 아기 띠를 빌려줘요. 또 늘 한가득 짐을 들고 다니는 아기 동반 가족들을 위해 물품보관함도 비치해뒀고, 수유실도 아늑하게 마련돼 있었습니다. 이유식을 먹는 아기를 위한 전자레인지는 물론 분유를 먹는 아기를 위해 따뜻한 물까지 따로 주신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갔던 그 어떤 공공시설보다 영유아 동반 가족들을 위한 시설이 잘 돼 있었어요.
박물관 내부는 을지문덕, 서희, 이순신 등 역사 속 영웅들에 대한 이야기와 우리나라의 전쟁사를 다양한 체험활동을 통해 익힐 수 있도록 꾸며져 있습니다. 다만 두 돌이 안 된 아이가 즐기기에는 너무 수준이 높았어요. 유치원에 다니는 정도의 아이가 왔다면 유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겠네요.
그런데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장소는 따로 있었어요. 박물관 마지막에 있는 아기 놀이터와 어린이 유격장이었습니다. 자상한 할머니 안내요원들이 키 110㎝ 아기는 놀이터로, 110㎝ 이상은 유격장으로 배치해주십니다. 큰 아이와 작은 아이를 섞어 놓지 않고 철저히 아이의 체격에 따라 놀이 공간을 분류해놓아 저희 딸아이처럼 어린 아기들도 안전하게 놀 수 있습니다. 푹신한 매트 위에서 터널과 계단을 지나다니는 아이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질 않네요. 관람 시간을 1시간으로 제한해 둔 이유가 이제 이해가 갑니다.
한참을 놀다 보니 어느새 이용 시간 종료가 다가오고 있다는 안내방송이 나오네요. 짐을 정리하고 입구 쪽 수유실에서 아기의 ‘재정비’를 마친 뒤 어린이박물관을 나섰습니다.
자연스럽게 역사 공부와 신체활동을 할 수 있는데다 아이 동반 가족을 위한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는 이곳은 실내활동 장소로 손색이 없네요. 특히 공공시설에 방문하면 항상 아이 엄마를 위한 배려가 2%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는데, 이곳은 시설 면에서 정말로 ‘별 다섯 개’를 주고 싶었습니다. 탁 트인 정원은 날씨 좋은 날 야외활동 장소로도 부족함이 없고요. ‘TV 제로(0)’를 위한 오후 나들이를 계획 중인 아기 엄마들이라면 전쟁기념관을 공략해보는 게 어떨까요?
<필진소개> 연유진·이수민기자
각각 딸과 아들을 키우고 있는 초보 엄마. 출산과 육아로 집에만 갇혀 있는 생활이 답답해 아기와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으며 돌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초보 엄마 숨통 터지는 유모차 여행’(다봄)을 공동 집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