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당의 유력 대선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최대 아킬레스건인 이른바 ‘e메일 스캔들’에 대해 연방수사국(FBI)의 면죄부를 받았다. 최근 공화당 대선주자 도널드 트럼프가 올랜도 게이 나이트클럽 참사에 대한 실언, 공화당 주류의 반감 지속 등으로 위기에 빠진 반면 클린턴은 대선가도에 청신호가 켜졌다. 다만 수사를 담당한 FBI 국장이 “클린턴 전 장관이 기밀정보를 다루는 데 극도로 부주의했다”고 정면 비판함에 따라 정치 쟁점화는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5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제임스 코미 FBI 국장은 힐러리의 국무장관 재임 시절 개인 서버로 송수신한 e메일 가운데 총 110건에 기밀이 포함돼 있지만 ‘고의적 법 위반’ 의도는 없는 것으로 파악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클린턴을 기소하지 않도록 법무부에 권고하기로 했다.
최근 로레타 린치 법무장관은 FBI의 수사 결과와 권고를 수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어 클린턴은 불기소 처분을 받으며 e메일 스캔들의 수렁에서 빠져나올 것으로 보인다. e메일 스캔들은 클린턴의 신뢰도 추락의 결정적 요인인데다 기소됐을 경우 대선후보 지위마저 위협받을 수 있었다.
이번 FBI 발표로 클린턴의 대선가도는 한층 더 탄력을 받게 됐다. 현재 클린턴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트럼프에게 최소 5~6%포인트 격차로 앞서고 있다. 트럼프는 여러 여론조사에서 한때 힐러리를 앞서기도 했다. 하지만 올랜도 총기참사 사건이 일어나자 “급진적 이슬람 테러리스트에 대한 내 판단이 옳았다”며 자화자찬을 늘어놓거나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에 대해 “파운드화 가치가 떨어지면 (자신이 운영하는) 스코틀랜드 골프장에 더 많은 사람이 찾아올 것”이라며 상식 이하의 발언을 일삼다가 자질 시비를 빚고 있다.
트럼프가 대선주자로 거의 확정됐지만 공화당 내 반감은 수그러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날 공화당 1인자인 폴 라이언 하원의장은 트럼프가 최근 유대인 비하 논란을 빚은 데 대해 “반유대인 이미지는 설 자리가 없다”며 강력히 비판했다.
반면 클린턴은 경쟁자인 버니 샌더스(버몬트) 상원의원의 추격에서 벗어난데다 주류진영의 지원까지 등에 업고 백악관행에 한발 더 다가섰다. 이날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노스캐롤라이나주(州) 샬럿을 찾아 클린턴과 처음으로 공동유세를 벌였다. 과거의 중립적 입장에서 벗어나 ‘힐러리 대통령’ 만들기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와이셔츠 차림으로 소매를 걷은 채 등장해 “남성이든 여성이든 역사상 클린턴만큼 대통령 자격을 갖춘 사람은 없다”며 “나는 이제 (대통령의) 배턴을 클린턴에게 넘겨줄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클린턴이 e메일 스캔들의 후유증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는 힘들다. 코미 국장도 “클린턴 전 장관이 법 위반을 의도했다는 분명한 증거는 발견하지 못했지만 매우 민감한 기밀정보를 취급하는 데 극히 부주의했다”고 정면으로 들이받았다. 미 언론들은 “클린턴의 e메일 두통이 가시지 않을 것(폴리티코)” “코미 국장이 날카로운 구두기소를 했다(CNN)”는 등의 반응을 내놓았다.
트럼프는 이날 트위터에서 “FBI 국장은 ‘사기꾼’ 힐러리가 국가안보를 손상했다고 말하면서도 기소는 하지 않기로 했다”며 “(사법) 시스템이 조작되고 타락했다”고 강력히 반발했다. 라이언 하원의장 등 공화당도 “법적 원칙이 훼손됐다” “발표 내용만 놓고 보면 기소감”이라며 맹비난했다.
/뉴욕=최형욱특파원 choihu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