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창조와 표절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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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2주 안에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그러려면 몇 가지 질문이 필요합니다. 살림살이가 7년 전보다 나아졌는가…. 이런 물음에 ‘예’라고 할 수 있으면 당신 결정대로 투표하면 됩니다. 그렇지 않다면 다른 선택을 해야 합니다.” 2005년 9월 독일 총선을 앞두고 벌어진 TV토론에서 앙겔라 메르켈 당시 기독교민주연합 당수의 발언이 끝나자 청중석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이튿날 1980년 미국 대선 당시 로널드 레이건 공화당 대통령 후보의 마무리 연설을 베꼈다는 지적이 제기됐고 결국 기민당은 표절을 인정하고 사과를 해야 했다.


표절 또는 모방은 아무 노력 없이 남의 것을 베꼈기 때문에 비난을 받는다. 윌 곰퍼츠 영국 BBC 아트 디렉터가 “모방하는 것은 기술이 필요하지만 상상력은 필요하지 않다. 창조성도 필요하지 않다. 그래서 기계가 그토록 잘할 수 있는 것”이라고 지적한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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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항상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인쇄 혁명을 가져온 요하네스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는 주변 포도주 양조장에서 프레스로 포도를 압착해 와인을 만드는 것을 보고 응용한 것이었다. 대량 생산의 문을 연 포드자동차의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은 도축장의 방법을 적용했고 산업 혁명을 촉발한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도 사실은 57년 전 발명된 증기기관을 수리하던 중 얻은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그래도 우리는 이를 표절이라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속에 담긴 창의력과 혁신에 찬사를 보낸다.

정부가 4일 발표한 대한민국 공식 브랜드 ‘크리에이티브 코리아(Creative Korea)’가 이틀 만에 표절 논란에 휩싸였다. 프랑스의 국가 산업 브랜드인 ‘크리에이티브 프랑스(Creative France)’와 단어가 똑같고 색상도 유사하다는 지적이다. 정부에서는 ‘크리에이티브’라는 단어를 한 국가가 독점할 수 없고 프랑스 사례도 이미 검토했지만 표절이 아닌 것으로 판단했다고 해명하고 있다. 표절 논란이 충분히 예상됨에도 국가브랜드로 채택했다는 얘기인데 그럴 만큼 디자인이 ‘창조적’이었던가. 35억원의 혈세를 쏟은 새 브랜드에 대체 어떤 상상력과 혁신이 담겨 있는지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 /송영규 논설위원

송영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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