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 1조달러 또는 2조달러 달성과 같은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우리 산업이 전반적으로 업그레이드되면 자연스럽게 무역의 규모와 질도 향상될 것입니다. 획기적인 산업 업그레이드를 이끌어낼 수 있는 ‘크리티컬 패스(최상의 경로)’를 찾아내야 합니다.”
김인호(사진) 한국무역협회 회장은 ‘한국무역협회 창립 70주년 기념식’을 하루 앞두고 14일 서울경제신문과 가진 단독 인터뷰에서 “협회 차원에서 생각해낼 수 있는 모든 아이디어를 총동원해 국내 기업들이 조금이라도 수출을 늘릴 수 있는 방안을 백방으로 시도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우리 기업과 정부는 지난해부터 심화된 수출부진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좀처럼 타개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한국 경제성장의 원동력인 ‘수출 엔진’이 이대로 꺼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자 수출 지원기관인 무협도 다각적인 지원방안을 내놓고 총력을 기울여왔다.
전자상거래 활성화, 해외 바이어 미팅 확대, 한류 마케팅 지원, 해외 시장 조사자료 제공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 같은 각개격파 식 해법은 근본적인 처방이 아니라는 게 김 회장의 지론이다.
그는 “무역지원책 따로, 경제정책 따로, 산업정책 따로인 시대는 지났다”며 “여러 가지 경제 문제를 별개 이슈로 보고 답을 찾는 방식이 한계에 달했다”고 강조했다. 올해로 70돌을 맞은 무협도 과거와는 획기적으로 변화된 인프라와 역할을 통해 새로운 30년을 대비하겠다는 포부다.
◇수출 확대 관건은 결국 ‘기업 경쟁력’…기업·국가 이익 일치하는 정책 내놓아야=김 회장은 “제조업을 정보통신기술(ICT) 및 사물인터넷(IoT)과 결합해 고도화시켜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서비스업을 육성하는 동시에 제조업과의 융복합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고급 소비재 수출을 늘리는 등 한국 경제가 전반적으로 업그레이드돼야 지금의 수출 부진을 근본적으로 타개할 수 있다”며 “이를 달성할 수 있는 크리티컬 패스를 찾아내 여기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제시한 크리티컬 패스는 바로 ‘기업가형 국가’다. 김 회장은 “우리가 경제 분야에서 당면한 문제의 핵심은 ‘기업 경쟁력 저하’”라며 “기업에 좋은 것이 나라에 좋고 나라에 좋은 것이 기업에 좋은 기업가형 국가를 만들어야 기업 경쟁력이 제고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와 국회가 기업에 좋은 정책을 내놓으면 ‘기업 봐주기’ 혹은 ‘꼼수’라는 식으로 여론이 안 좋게 흘러가는 것은 잘못됐다는 게 그의 시각이다. 김 회장은 “기업의 이익과 국가의 이익이 일치하도록 경제를 설계하고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법인세를 예로 들었다. 김 회장은 “많은 사람들이 법인세 인하는 기업에만 이익이라고 생각한다”며 “그러나 법인의 소득은 궁극적으로 개인의 소득으로 치환된다”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이제 기업들이 전 세계를 기반으로 활동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과연 우리나라가 경쟁국에 비해 기업 하기 좋은 나라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현재 법인세도 낮은 수준이 아니다. 오히려 내렸으면 한다”며 “기업 경영 여건에 법인세가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생각하면 답은 명확하다”고 말했다.
◇70돌 무역협회, 잠실 MICE 밸리 건설로 무역 인프라 확대=올해로 창립 70년을 맞은 무역협회는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해외 시장 개척과 같은 기본적인 역할은 전제로 깔고 ‘전반적인 산업 업그레이드’를 위한 무협의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중 잠실 MICE(기업회의·포상관광·컨벤션·전시회) 밸리 구축을 통한 무역 인프라 확대, 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책 건의 활성화 등 두 가지를 역점사업으로 꼽았다. 김 회장은 “다음달 중으로 서울시에 잠실 MICE 밸리 건립사업 제안서를 제출할 예정”이라며 “이를 위해 건설사, 해외 투자가 등과 활발한 물밑접촉을 벌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무협은 서울시가 추진하고 있는 잠실 일대 대규모 전시컨벤션 복합시설 사업시행자로 참여해 제2의 무역센터를 만들 계획이다. 그는 “지은 지 30년이 지난 현재 무역센터는 이제 무역 인프라로서 한계에 달했다. 경제 규모에 비해 비좁아진 코엑스는 내수용 전시에 그치고 있다”며 “국제적인 전시를 기획·유치하려면 현재 코엑스보다 대여섯 배는 커야 한다”고 설명했다.
◇숫자에 집착하면 정책수단 왜곡돼…이젠 구조적·질적 개선에 초점 맞춰야=아울러 김 회장은 기업 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무협의 정책적 건의 기능도 강화할 방침이다. 그는 “무협이 서비스산업 수출 확대를 위해 오랫동안 준비해온 세제 개선안이 이번 세제개편안에 반영됐다”며 “앞으로도 기업 수출 경쟁력을 늘리기 위한 규제개혁에 정책 제안을 많이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무역 2조달러가 언제 열리겠느냐’는 질문에 “1조달러니 2조달러니 하는 숫자에 집착해서는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나 역시 50년간 숫자를 보면서 살아왔지만 이제 숫자로 표시된 목표보다는 구조적·질적 개선을 도모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는 “성장률 3.2%는 되고 2.9%는 큰일 난다는 식이면 안 된다”며 “문제의 본질은 비계량적인 요소에 있는데 계량적인 단기 목표에 집착하다 보면 정책수단이 왜곡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제를 구조적·질적으로 개선하면 숫자는 결과적으로 따라오게 마련”이라며 단순하지만 가장 중요한 답을 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