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 보험업계의 폭탄 돌리기

박태준 금융부장

IFRS4 2단계 기준 적용땐

국내 보험사 부채 100조 늘어

자본 확충 대비책 절실한데

책임 미룰 생각하는 CEO 없길





무서운 세상이다. 셀 수 없이 많은 폭탄이 돌아가고 있다. 불발탄은 없다. 언제고 한 번은 터지고야 마는 폭탄들이다.


원래 ‘폭탄 돌리기’는 증시가 원조였다. 투기로 급등한 주가. 투기 세력이 썰물처럼 빠져 주가가 급락하면 또 하나의 폭탄이 터진 것이다. 얼마 전 보호예수가 풀린 후 주가가 85%나 떨어진 코데즈컴바인. 대주주는 주가 폭락 전 보유 지분을 내다 팔아 900억원이 넘는 차익을 벌어들였다.

최근 기업 구조조정에서 폭탄 돌리기는 그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STX조선이라는 폭탄이 일단 터졌다. 2014년 7월 산업은행이 STX조선에 대한 자율협약을 신청한 지 3년 만이다. 그 3년여 동안 채권단은 STX조선에 무려 4조5,000억원을 지원했다.

성동조선과 SPP조선 등 중소조선사 등도 불안 불안하게 돌아가고 있지만 정말 걱정되는 대형 폭탄은 대우조선해양이다. 은행권의 익스포저만 22조원에 달한다. 수년 동안 이자도 못 버는 한계기업인 이 회사를 채권단과 금융당국·정치권까지 나서 “멀쩡하다”며 폭탄 돌리기를 했다. 가까스로 추가 자구안을 만들어 급한 불은 껐다지만 불투명한 업황 속에 이 폭탄이 터졌을 때 그 파괴력은 가늠조차 하기 힘들다.


나의 주택담보대출 1억원은 부디 폭탄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나라의 가계부채 1,200조원은 시장 환경만 바뀌며 심지가 타들어 가게 될 잠재적 폭탄이다. 이 대목에서는 초저금리 시대가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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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초저금리 덕분에 폭발력의 강도가 더욱 커진 폭탄이 돌아다니는 곳이 있다. 분양 시장의 과열 양상이 심상치 않은 부동산 시장이다. 저금리에 갈 곳 없는 돈이 부동산 시장으로 몰리고 있다. 수도권 신규 공급 아파트는 지역 불문하고 수십대1의 청약 경쟁률을 기록하며 거품을 만들어내고 있다. 단기 차익을 노린 프리미엄 거래도 성행 중이라니 ‘쾅’ 소리가 들릴 날이 머지않아 보인다.

이렇게 많은 폭탄 중에서도 나는 자꾸 보험업계에서 돌려지는 폭탄에 자꾸 신경이 쓰인다. “모든 금융 업종이 사양 산업”이라는 자조적인 말들이 심심치 않게 들리는 요즘이지만 이 중에서도 보험업의 전망은 특히 우울하다. 1%대까지 떨어진 기준금리는 과거 10% 안팎의 고금리 상품을 말 그대로 ‘팔아 재끼던’ 보험사에 엄청난 부담을 주고 있다. 여기에 ‘IFRS4 2단계’로 불리는 새로운 국제 회계기준이 숨통을 죄어오고 있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국내 보험사의 부채는 100조원 가까이 늘어나게 된다. 회사 문을 닫을 게 아니라면 부채가 늘어나는 만큼 자본을 더 쌓아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데 어느 보험사도 자본 확충 준비에 열심이라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물밑에서 은밀하지만 치밀하게 대비책을 세워 놓고 있다면 다행이지만 실제 그런 거 같지도 않다. 보장성 상품보다 부채 부담이 큰 저축성보험의 비중이 보험업계 평균 60%를 꾸준히 넘고 있다는 사실에 한편으로는 태평스러워 보인다.

보험업계에 대한 이 같은 경고는 늘 현직 최고경영자(CEO)들의 책임론으로 마무리된다. 보험업계의 폭탄은 언제쯤 굉음을 내며 터지게 될지 그 시점이 예고돼 있어 더욱 그렇다. 폭발의 위험성이 고조될 오는 2018년쯤 가벼운 마음으로 후임자에게 자리를 내어 주기만 하면 된다는 식의 경영을 하고 있다는 게 현직 보험사 CEO에 대한 외부의 평가다.

기업의 미래 환경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했다고 해서 경영상의 불법성이 없는 한 ‘구속’되거나 ‘기소’되지 않는다. 현직 보험사 CEO 누구도 ‘그러면 그만’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기왕에 사장까지 지냈던 회사의 후배들에게 원망보다는 존경 받는 선배로 기억돼야 한다는 생각이 가슴 한 켠에 있을 것이라 믿는다. /박태준 금융부장june@sedaily.com

박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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