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성매매 남성들의 정보를 털어 공개된 온라인 장소에 올리는 ‘패치’가 화제가 됐다. 누군가를 엄단하고 싶은 마음, 정의의 이름으로 벌을 내리고 싶은 마음에 이런 행위가 나오고 있다. 이렇게 되면 정보가 까발려진 사람이나 폭로한 사람이나 모두 법을 어긴 경우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치’를 주도한 사람들의 의견은 한결같다. 불법 행위를 했는데도 처벌받지 않는 사람들을 자신이 찾아내 만천하에 공개했으니, 오히려 ‘정의롭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이 사건을 목격하면서 나는 과거 있었던 특이한 사건 하나를 떠올렸다. ‘정의’의 이름으로 김구 선생 암살범 안두희를 격살(擊殺)한 부천의 버스기사 박기서씨 이야기다.
안두희는 김구 선생을 죽인 이후에도 육군 소위로 복직하고 소령으로 예편하는 등 역사적 반역에 따르는 처벌을 받지 않았다. 군납 공장을 경영하기도 했고 몇 차례 길거리에서 테러를 당하고서도 96년까지 계속 생존했다. 이 사실을 알고 있었던 박기서 씨는 안두희의 집 주변을 서성거리다가 1996년 10월 23일 오전 11시 30분 경 인천 신흥동의 안씨 자택으로 난입, ‘정의봉’으로 거사를 행했다. 엄연한 살인이었다. 그러나 1997년 재판부는 그의 범행 동기를 정상 참작하여 징역 3년을 내렸고,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은 그를 특별사면했다. 누구도 하지 못한 ‘의거’를 단행한 데 대한 응분의 보답이었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런데 박 씨의 거사 뒤에 법학자들과 지식인들의 논란이 일었다. 과연 ‘정의의 이름으로 거행한 살인’은 정당하다고 볼 수 있을까? 우리 법이 역사와 국민 정서 앞에 약하다 하지만, 엄연한 인간 생명을 빼앗은 사람에게 특혜를 베푸는 것이 옳은 일일까? 흔히 자신을 수비하기 위해 응당 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정당 방위’ 이외의 살인이 온갖 사회적 명분을 입어 옹호될 수 있는 것일까? 여기에 대해 아직까지 명쾌한 해답은 없다. 다만 박기서 씨의 경우에 그의 행위가 역사적 정당성을 지닌다는 아주 특수한 점을 빌어 ‘용서’ 또는 ‘상찬’되었을 뿐이다.
다시 ‘패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남성우월적인 성향을 지닌 남성들을 징벌하는 ‘한남패치’, 화류계 생활을 즐기는 자들을 폭로하는 ‘논현패치’ 등이 온라인 판 ‘박기서 씨’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일련의 계정 운영자들은 누군가로부터 피해 받은 경험에서 출발해 일을 저질렀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들이 과거 역사적 명분을 가졌던 박 씨와 다른 점이 있다면, 누군가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데서 맛보게 되는 쾌감이 아닐까 한다. 실제로 많은 패치 계정 운영자들은 제발 자신의 정보를 지워달라며 애걸복걸하는 남성들의 모습에 즐거움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비록 나쁜 사람들과 관련된 이야기를 사회와 공유하는 일이었으되, 진정한 의미의 ‘의거’는 아니었음을 인정한 것이다.
법과 제도의 힘을 빌지 않고 누군가를 직접 벌하는 사회. 어떻게 보면 징벌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아닐까도 싶다. 그런데 의인을 자처하는 패치 운영자들의 의도가 꼭 순수하지는 않음을 볼 때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편치만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리고 이들이 박기서 씨처럼 자신을 의사라고 포장한다면, 그 행위가 어디까지 용납될지 궁금하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