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 쿠데타 진압 이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설계하는 ‘새로운 터키’가 서방 국가들의 새로운 중동 리스크로 부상하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난 15일 발생한 쿠데타 연루 혐의로 7,500여명의 군 및 법조계 인사를 체포하고 공무원 8,777명의 업무를 중지시키는 등 정권 반대세력에 대한 대규모 ‘숙청’을 예고하며 독재와 탄압정치의 막을 열었다. 게다가 에르도안의 독재화와 ‘보복정치’에 대한 서구의 견제가 강화되는 가운데 터키가 대(對)러시아 관계개선 속도를 높이면서 외교정책에도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에르도안 대통령이 지난 15일(현지시간) 발생한 쿠데타 진압 이후 약속한 ‘새로운 터키’는 국가권력이 대통령에게 집중되고 세속주의 엘리트 집단이 정치적 세력을 잃게 된다는 점에서 지금까지와는 근본적인 차이를 보일 것이라고 18일 보도했다. 서구와 이슬람권을 이어주는 민주주의 국가 대신 일당독재와 이슬람주의 회귀로 특징지어질 터키의 향후 행보는 테러 및 난민사태 해결이라는 현실적 문제와 민주주의 가치 수호라는 두 선택지에 낀 서구 국가들에 심각한 딜레마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연합(EU)은 18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28개 회원국 외교장관 회의를 열어 민주화에 역행하는 터키의 ‘보복정치’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를 높였다. 케리 장관과 페데리카 모게리니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터키 정부에 “국가 안정을 유지하고, 민주주의 제도와 법에 의한 지배를 존중”할 것을 촉구했다. 이에 앞서 프랑스의 장마르크 에로 프랑스 외무장관은 TV방송에 출연해 터키의 쿠데타가 에르도안의 정적들을 침묵시키는 “백지수표”로 사용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문제는 에르도안의 폭주에도 불구하고 서구 국가들이 시리아 사태와 극단주의 이슬람 세력과의 ‘테러와의 전쟁’, 유럽으로 쏟아지는 난민 문제 등 복잡하게 뒤얽힌 중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터키의 협력을 구해야 하는 입장이라는 점이다. 이 때문에 에르도안이 제시하는 ‘새로운 터키’는 중동과 유럽의 새로운 지정학적 리스크로 부상하는 실정이다.
이런 가운데 에르도안 대통령이 다음달 초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회동하기로 한 사실이 전해지면서 향후 터키의 외교정책 변화에 대한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터키 관영 아나돌루통신은 이날 대통령실 관리들의 말을 인용, 푸틴 대통령이 쿠데타 시도와 관련해 터키 정부에 대한 지지의사를 밝히면서 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했다고 전했다. 두 정상 간 회동은 지난해 11월 터키 공군이 영공을 침범한 러시아 전투기를 격추하면서 양국 관계가 악화된 후 처음이다. 두 정상은 지난달 잠정적으로 정상회담을 약속하기는 했지만 쿠데타 진입 직후에 구체적인 계획이 발표됐다는 점에서 에르도안이 자신의 정적인 재미 이슬람학자 펫훌라흐 귈렌 송환 문제에 응하지 않으면서 법치·인권수호 등을 거론하며 압박하는 미국 등 서구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기 위해 친러 행보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해석을 불러일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