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금리로 투자처를 찾지 못해 입출금통장 등 단기 금융상품에 몰려 있는 단기 부동자금이 처음으로 950조원을 돌파했다. 은행에 저축된 돈이 기업 등을 통해 실물 부문으로 투자되는 국민경제 선순환 구조가 멈췄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8일 한국은행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5월 말 현재 단기 부동자금은 전월보다 15조1,398억원 증가한 958조9,937억원을 기록했다. 단기 부동자금이 950조원을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1년 전과 비교하면 93조원가량 늘었다.
금융상품별로 보면 예적금 등 수시입출식 저축성 예금이 454조3,345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입출금에 제약이 없는 요구불예금도 188조5,700억원에 달했다. 이어 △머니마켓펀드(MMF) 69조9,980억원 △종합자산관리계좌(CMA) 44조3,670억원 △양도성예금증서 20조1,996억원 △환매조건부채권(RP) 10조2,284억원 등의 순이었다.
여기에 6개월 미만 정기예금 69조6,950억원과 증권사 투자자예탁금 21조4,718억원, 현금 80조1,294억원을 더해 단기 부동자금이 산출됐다. MMF 등의 잔액은 금융사 간 거래인 예금취급기관 보유분과 중앙정부, 비거주자의 보유분을 빼고 집계한 것이다.
이 단기 부동자금은 특히 지난해에만 전년 대비 137조원(17.2%)이나 증가했을 만큼 증가 속도가 가팔라지고 있다. 시중에 풀린 자금이 얼마나 잘 도는지를 보여주는 통화 승수는 5월 17.0배로 역대 최저 수준에 머물렀다. 시중에 자금이 풀려도 기업의 생산·투자와 가계의 소비가 늘지 않는 이른바 ‘유동성 함정’에 빠진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이지언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저금리·저성장 기조 속에서 단기 고수익만 추구하면 위험성이 큰 쪽으로 갈 수밖에 없다”면서 “장기 투자가 필요한 주식·채권시장과 기업들의 자금조달은 상대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