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말뫼 현지 르포]파업 대신 뼈깎는 구조조정..."14년후 말뫼는 눈물을 거뒀다"

"산업구조 바꿔 위기를 기회로" 노사정 의기투합 결실

"두려움만으로는 아무것도 못해...한국조선도 변해야"

한때 세계 최대 조선소 코쿰스가 있었던 스웨덴 말뫼에는 옛 영화의 상처와 미래가 공존하고 있다. 19일(현지시간) 코쿰스가 사용하다가 버려진 건물(왼쪽 사진)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채 흉물스럽게 남아 있지만 리베르스보리 해변 인근에서 바라본 54층짜리 주상복합 ‘터닝토르소(오른쪽 사진)’에서는 말뫼의 변신과 부활을 느낄 수 있다. 그들의 부활에는 위기 상황에서 손을 잡은 경영진과 노동자, 그리고 정부가 있었다.  /말뫼=박재원기자한때 세계 최대 조선소 코쿰스가 있었던 스웨덴 말뫼에는 옛 영화의 상처와 미래가 공존하고 있다. 19일(현지시간) 코쿰스가 사용하다가 버려진 건물(왼쪽 사진)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채 흉물스럽게 남아 있지만 리베르스보리 해변 인근에서 바라본 54층짜리 주상복합 ‘터닝토르소(오른쪽 사진)’에서는 말뫼의 변신과 부활을 느낄 수 있다. 그들의 부활에는 위기 상황에서 손을 잡은 경영진과 노동자, 그리고 정부가 있었다. /말뫼=박재원기자


“모두가 직장을 잃는 위기의 상황에서 말뫼 사람들은 모두가 손을 잡았어요. 그리고 지금 우리는 눈물을 거뒀어요.”


19일(현지시간) 스웨덴 말뫼의 리베르스보리 해변 인근에 자리 잡은 미래형 첨단 주상복합빌딩 ‘터닝토르소’. 말뫼 공항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이곳은 과거 세계 최대 조선소였던 코쿰스의 골리앗 크레인이 서 있던 자리다. 조선업 몰락으로 지난 2002년 9월 현대중공업에 단돈 1달러를 받고 넘긴 그 크레인이다.

눈물의 장소에는 말뫼의 새로운 상징인 54층짜리 터닝토르소가 우뚝 솟아 있었다. 인근 코쿰스가 쓰던 건물 가운데 일부는 스타트업을 위한 장소로 탈바꿈했다. 정오가 되자 이 건물에서는 젊은 직원들이 삼삼오오 점심을 먹기 위해 쏟아져 나왔다. 주변에서는 조선소의 옛 영화를 아는지 모르는지 유럽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이 일광욕과 기념촬영을 하느라 바빴다.

옛 조선소 자리 한편에는 예전에 코쿰스에서 쓰던 건물이 흉물처럼 남아 있지만 이곳은 완전히 새로 태어난 도시 같았다. 2002년 9월의 ‘말뫼의 눈물’은 흔적조차 없었다.

거리에서 만난 빅토르 칸손(25)씨는 “말뫼는 이제 눈물을 거뒀다”며 “신재생에너지, 정보기술(IT) 등에 종사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면서 몰락한 코쿰스의 흔적을 지워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대중공업이 23년 만에 현대자동차와 함께 동시 파업을 한 19일.


말뫼는 경영진과 노동조합·정부가 한마음으로 구조조정을 이겨낸 뒤 앞으로 나가고 있었고, 울산의 조선소는 파업과 불신으로 앞날에 먹구름이 끼어 있었다. ‘말뫼의 눈물’. 조선업의 주도권을 우리나라와 일본에 넘겨준 스웨덴의 아픔이면서 대한민국의 자랑이었지만 14년이 흐른 지금은 ‘말뫼의 눈물’이라는 말을 지워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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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말뫼는 1980년대 이후 조선업이 몰락하기 시작하자 1995년 경영진과 노조·지방정부가 협의체를 구성해 6개월 동안 대안을 찾았다. 현대중공업에 크레인을 판 2002년에는 창업 인큐베이터 ‘밍크’를 개소했다. 줄어든 일자리를 채울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한 결과다. 말뫼시의 한 관계자는 “당시 시장이었던 일마 리팔루는 ‘크레인과 이별을 준비해야 한다’고 수차례 얘기했다”며 “크고 작은 갈등이 있었지만 결국 친환경과 IT를 중심으로 새 먹거리를 만들어보자고 했다. 싸우고 갈등해봐야 현실을 되돌릴 수는 없는 것”이라고 전했다.

말뫼의 변신은 대성공이었다. 말뫼시에 따르면 조선업의 몰락으로 한때 2만8,000여개의 일자리가 사라졌지만 2000년 이후 IT 같은 신산업에 투자하면서 6만3,000여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생겼다. 새로 만들어진 기업만도 200여개에 달한다. 1990년대 22%에 이르렀던 실업률도 13% 수준까지 떨어졌다. 1980~1990년대 23만명 수준까지 떨어졌던 말뫼시의 인구는 2010년을 넘어서며 30만명을 돌파했다.

조선업의 몰락과 말뫼의 부활을 지켜본 안나 스티오나(64)씨는 “덴마크 코펜하겐과 이어지는 연륙교가 생기면서 국제도시로 거듭난 말뫼는 생명공학·컨벤션 산업 등 고부가가치 산업이 주도하는 곳이 됐다”며 “아름다운 이곳을 지킬 수 있어 너무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말뫼의 성공은 시민과 당국이 똘똘 뭉친 것이 주효했다.

1995년의 노사정 대안 찾기를 시작으로 조선소 공장이 있던 자리를 친환경적 미래형 도시로 바꾼다는 계획을 세웠다. 2001년 웨스턴하버 지역에 유럽 최초의 친환경 주거단지를 지은 것을 시작으로 옛 공장터 곳곳을 IT 관련 창업본부로 탈바꿈시켰다. 앞서 2000년에는 말뫼와 덴마크 코펜하겐을 연결하는 외레순 대교도 개통했다. 경제권을 더 넓히기 위한 전략이었던 셈이다. 7.8㎞의 다리가 생기자 말뫼와 코펜하겐은 상업적으로 연결됐다. 지금은 말뫼 인구의 약 10%가 매일 이 다리를 건너 코펜하겐에서 근무한다는 게 말뫼시의 설명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제조업으로서의 조선 산업이 중요하고 인력이나 설비 측면에서 여전히 강점이 있다. 조선업을 아예 접은 말뫼의 길을 답습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제는 파업 대신 변화를 택해야 하고 노조와 시민·정부가 합심해 조선업의 경쟁력을 높이거나 신산업을 찾아야 할 때다. 말뫼시의 한 관계자는 “한국이 조선 분야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들었다”며 “말뫼시가 정답은 아니지만 변해야 살 수 있다는 점만큼은 교훈이 될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말뫼=박재원기자, 김영필기자 susopa@sedaily.com

김영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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