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니·재규어랜드로버·애스턴마틴·롤스로이스·벤틀리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고향이 영국이라는 점, 그리고 주인이 바뀌어도 살아남은 자동차 브랜드라는 점이다. 브랜드만의 독특한 디자인과 고유 감성은 마니아층을 만들었고 ‘회사는 망해도 브랜드는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 지난 1997년 애플로 귀환한 스티브 잡스는 임원 회의에서 “앞으로 애플의 미래는 이 사람에게 물어보라”고 말했다. 당시 소개한 사람이 애플의 디자인팀장이었던 조너선 아이브였다. 잡스는 ‘디자인이 애플 제품의 시작’이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아이팟·아이폰·맥북 등 걸작들을 내놓을 수 있었다.
제조업 분야에서 디자인과 철학 등 이른바 ‘감성품질’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성장동력을 찾지 못하는 우리 제조업체들의 혁신이 ‘디자인’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다.
디자인과 철학의 중요성은 소비시장의 변화가 배경이다.
대량 생산으로 많은 돈을 벌던 과거와 달리 공급과잉으로 프리미엄 제품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가 ‘제네시스’를, LG전자가 ‘LG 시그니처’를 출시한 것도 이런 이유다.
국내 자동차 업계에서도 최근 디자인을 통한 성공 사례는 더러 있었다. 최근 르노삼성자동차가 선보인 중형세단 ‘SM6’가 대표적이다. 현대차의 쏘나타가 지배하던 중형세단 시장은 디자인과 감성품질을 강화한 SM6에 의해 재편되는 모습이다. 과거 기아자동차가 2010년 세계 3대 자동차 디자이너 피터 슈라이어를 영입해 ‘K5’로 중형 시장을 뒤흔들었던 것 역시 디자인의 힘이었다. 하지만 아직은 품질이 디자인에 가려져 저평가된다는 지적이 많다.
최근 들어서는 디자인과 감성품질의 중요성에 눈뜨고 있다. 지난해 현대차가 럭셔리 브랜드 제네시스를 출시하면서 벤틀리 디자인 수석 루크 동커볼케, 벤틀리 외장 및 선행 디자인 총괄인 이상엽을 잇달아 영입하고 람보르기니 브랜드 총괄 임원 출신의 맨프레드 피츠제럴드가 합류한 것도 긍정적인 신호다.
최근에는 성과도 내고 있다. 현대차가 최근 공개한 ‘아반떼 스포츠’가 대표적이다. 독일 BMW에서 영입한 고성능차 전문가 알버트 비어만이 70% 정도 제작 과정에 참여하면서 기존에 현대차가 보여준 차량과는 완전히 다른 차를 내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자 분야에서도 디자인과 감성 마케팅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애플의 성공을 눈으로 본 업체들은 성능은 물론 감성까지 채워줄 수 있는 혁신적인 디자인에 집중하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 ‘갤럭시S7’의 성공 비결 역시 혁신에 더해 감성품질을 잡았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가전 부문에서는 LG전자의 트윈워시 세탁기가 북미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끄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제조업 부문에서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의 가치는 상당히 높은 편이지만 디자인 등 감성품질 경쟁력으로 인해 오히려 제품 가치가 손상되는 면이 없지 않다”며 “1%의 감성을 잡기 위한 혁신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