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영웅들의 홉(HOF)원결의

[식담객 신씨의 밥상] 열여덟번째 이야기-호프



한여름 무더위에 새벽에 깨는 날들이 잦습니다.

폭신한 방안 침대를 버리고, 조금이라도 바람이 잘 드는 거실로 나갑니다.


바닥에 내던지듯 요를 깔며 투덜댑니다.

“주옥같이 덥네!”

불현듯, 무지막지하게 타오르던 여름이 떠오릅니다.

찌디 쪘던 1994년의 불볕세상이.

나의 대학교 첫 여름방학은 치열했습니다.

고등학생 때 품었던 ‘자전거 전국일주’와 ‘독서 100권 돌파’의 희망사항은 그저 개꿈이 되고 말았습니다.

학교를 계속 다니려면 일을 해야 했습니다.

대학교에 들어와서 유일하게 열심히 했던 영어연극반활동까지 접었습니다.

가을 공연을 준비하려면 여름 내내 밤낮으로 준비해야 하는데, 난 그 시간에 돈을 벌어야 했습니다.

치솟는 더위만큼, 아르바이트 구하기도 치열했습니다.

늦은 밤 가락시장에서 청과류 운반일 한다고 갔다가, 배추도사랑 무도사 패거리만 구경하다가 왔습니다.

돈을 많이 번다는 말에 솔깃했는데, 손수레 대여비 3천원만 날렸습니다.

하루에 거금 4~5만원을 벌겠다고 꼭두새벽부터 인력사무소에 나가 봤지만, 할 줄 아는 게 없다고 허탕치기 일쑤였습니다.

운 좋게 선배의 소개로 일당 3만원짜리 일을 얻었습니다.

안산공단에서 도시가스관을 착색하는 일이었습니다.

20여 미터짜리 금속관을 가열시설에 달군 후 분말조에 담그면, 가루가 녹아붙어 관이 코팅되는 작업이었습니다.

대구 기온이 39.4도까지 올랐던 날이었습니다.

열기에 머리가 어지러워 작업복을 벗고 일했더니, 살이 익고 말았습니다.

그날 저녁 샤워를 하다가 거울을 보니, 혈관 하나 하나가 선명하게 살밖으로 비쳤습니다.

무서워서 일을 그만뒀습니다.

어쩔 수 없이 안전한 일을 찾았습니다.

학교 앞 호프집 파트타이머, 시급 2천원.

여섯시부터 열두시까지 하루 여섯 시간 일하면 1만2천원.

쉬는 날은 한 달에 하루, 월급 약 35만원.

등록금 140만원에는 턱도 없지만, 다른 생각 안 하고 돈 벌기엔 나쁘지 않았습니다.

한참 놀고 돈 쓰는 시간에, 쟁반 들고 바지런히 홀 안을 뛰어다녀야 했으니까요.

호프집 일상이란 게 뻔했습니다.

주문 받고, 술이랑 안주 나르고, 재떨이 갈아주고, 빈 테이블 청소하고, 새 손님 받고, 영업 마치면 청소하고.

그 작은 세상에서도 별별 손님들이 다 있었습니다.

음주량 조절에 서툰 연둣빛 청춘들은, 화장실과 테이블, 복도를 가리지 않고 토해댔습니다.

처음엔 더럽고 짜증스러웠지만, 나중엔 담배 한 대 피우고 시큼한 냄새를 웃어넘길 만큼 익숙해졌습니다.

후배를 처음 받는 2학년들은 자그마치 1년이나 더 산 인생의 지혜를 설파했고, 예비역 복학생들은 철학자가 된 듯 세상에 코웃음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얘들도 가끔 아무데나 토했습니다.

민무늬 전투복을 입은 방위병들이 골치 아팠습니다.

나라에 저당잡힌 청춘이라 그랬는지, 툭하면 알바인 내게 울분을 토하며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집밥 먹으며 부모님 매일 뵙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데... 복에 겨웠던 녀석들.

가장 짜증나는 인간들은 학교옆 삼성제약 직원들이었습니다.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부장이란 사람을 주축으로, 일주일에 한두 차례 30~40대 아저씨 10여 명이 회식하러 왔습니다.

술이 오르면 예쁘장한 여직원 순덕이에게 5천원짜리 지폐를 내밀며 수작을 부렸습니다.

내게는 팔지도 않는 한라산을 사오라고 하더군요.

공손하게 없다고 했더니 쌍욕을 해대며 밖에서 사오라고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이 새끼야, 그 따위로 해서 사회생활 할 수 있을 것 같아!”

학생들보다 매상은 많이 올려줬지만, 인품은 시궁창에 처박힌 인간들이었습니다.

여러 무리를 막론하고, 가장 힘든 일은 ‘500뺑뺑이’였습니다.

예닐곱 명 일행이 500cc 맥주를 한 잔 시키고, 가져갈 때마다 한 잔씩 추가주문을 했습니다.

당연히 종업원이 할 일이지만, 그렇게 알바 두셋이 스무 개 팀을 서빙하려면 진이 빠졌습니다.

장사가 엄청나게 잘 됐습니다.

생맥주 500cc 한 잔에 1,100원, 하이트 한 병에 2,000원, 수제 돈까스 안주가 3,000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름방학 중인데도 하루 매상이 150만원 이상 오르기 일쑤였습니다.

학기 중보다 30% 이상 높은 수치였습니다.

달빛마저 이글대던 불 같은 여름, 에어컨이 흔하지 않던 1994년의 젊은이들에겐 건대후문 ‘테이크’는 오아시스였던 것 같습니다.

모처럼 한가롭던 토요일 저녁, 주방장 아저씨는 인기 절정의 주말연속극 ‘서울의 달’에 정신이 팔려 있었습니다.

나는 서늘한 대형 에어컨 앞에서 득음수련 중이었습니다.

“어허이오오오오~”

족보도 없는 소리를 흥얼대며, 오랜만의 조기퇴근 기대에 들떠 있었습니다.


그런데 드라마가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손님들이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관련기사



아, 9시 뉴스데스크가 시작하는 시계침 소리가 ‘맥줏집으로 달리기 출발 총성’이었나 봅니다.

알바가 한 명 안 나온 날이라 살짝 허둥댔지만, 부지런히 뛰다 보니 어느새 시계는 10시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딸랑 ~”

출입문 종소리에 가슴이 철렁해집니다.

스물한두 살쯤으로 보이는 청년 셋입니다.

정돈된 두발에 깔끔한 남방셔츠와 면바지를 입었었습니다.

“손님 죄송한데 저희가 오늘은 11시 반에 마감입니다.”

“괜찮습니다. 마치시기 전에 일어나겠습니다.”

이목구비 뚜렷한 미남들이 태도도 공손합니다.

살짝 낮은 목소리마저 풀을 먹여 다린 듯 단정합니다.

“뭘로 드시겠어요?”

“아, 네. 2000cc 피처 세 개랑 스테이크 안주하고 낙지볶음, 멕시칸 샐러드 하나씩 주십시오.”

세상에, 4만원이 넘습니다!

88라이트 한 갑이 700원인데~

세 명이 생맥주 500 두 잔씩에 돈까스 안주 하나 시켜도, 만 원도 안 나오는 테이크에서!

이 미남들 대화도 점잖습니다.

“자, 이렇게 우리 우정 간직하자. 살다 보면 누군가는 먼저 성공하고, 누군가는 뒤처지기도 하겠지만, 먼저 손 내밀어 주는 거다.”

“그래, 그때 내민 손 부끄럽지 않게 바로 잡아주자.”

“너희처럼 멋진 친구들을 둔 게 큰 행운이야. 함께 성공하고, 함께 행복하자!”

교과서를 읽는 듯한 문어체 말투가 어색한데 멋스럽습니다.

뼈대 있는 가문에서 태어나 가정교육을 잘 받았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흡사 삼국지 영웅호걸들의 도원결의를 보는 듯합니다.

기품 있고 고고하며, 신의가 가득해 보입니다.

호프집의 결의라 멋대로 ‘HOF원결의’라고 이름 붙여 봅니다.

내 나이 또래인데, 뭐 저렇게 멋있을까 살짝 질투가 납니다.

“대두야, 뭘 그렇게 멍하니 봐? 레몬소주 만들게 쥬스가루 좀 사와라. 편의점은 비싸니까 시장 슈퍼로 가.”

시장에 갔더니 사장님이 말씀하신 슈퍼가 문을 닫아 한참을 헤맵니다.

더위와 피로에 담배도 두어 대 피우다 보니, 어느새 11시를 훌쩍 넘었습니다.

“야, 쥬스를 빻아서 오냐? 얼른 갖다 놓고 저 양반들 좀 깨워라.”

사장님 손길을 따라가니, 아까 멋쟁이 청년 셋이 테이블에 엎드려 퍼자고 있습니다.

2000cc 피처에 술이 1/3쯤 남아 있습니다.

“사장님, 저게 몇 개째에요?”

“몇 개째긴, 아까 처음 시킨 거지.”

안주는 거의 건드리지도 않았습니다.

대체 이 매력적인 형들은 왜 이러는 건지 이해는 안 가지만, 그래도 멋있습니다.

“손님, 저희 마감할 시간입니다.”

“후르릅, 아, 네...”

테이블에 흥건한 침을 황급히 들이삼키는 모습도 근사합니다.

계산을 하며 살짝 휘청거리지만, 품위는 고고합니다.

나도 조금 더 나이 들면 저들처럼 되고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빠빠빠 빠빠빠 빠빠빠빠 빠빠빠~”

때마침 딕훼미리의 ‘또 만나요’가 흘러나옵니다.

“지금은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다음에 또 만나요~”

멋져 보이는 저 청년들이 마치 오래 사귄 벗인 듯 보내기 아쉽습니다.

정말 다음에 또 만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헤어지는 마음이야 아쉬웁지만, 웃으며 헤어져요~ 다음에 또 만날 날을 약속하면서, 이제 그만 헤어져요~”

*맥아[麥芽: 보리 맥, 싹 아/mault(보리에 물을 붓고 사흘 동안 두어 싹을 틔운 것. 엿기름)]*맥아[麥芽: 보리 맥, 싹 아/mault(보리에 물을 붓고 사흘 동안 두어 싹을 틔운 것. 엿기름)]


22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 봐도, 꽤 괜찮아 보였던 이들이었습니다.

아마 그 무렵 나는 반말과 무시와 500뺑뺑이와 토사물 청소에 고단했던 것 같습니다.

처음으로 깍듯한 대우를 받으니, 그들에게 감사해 동경하는 마음이 일었나 봅니다.

예의 바른 태도와 점잖은 말 한 마디가 준 감동이었습니다.

그 덕분인지, 난 지금도 어느 곳에 가든 서빙 직원에게 공손하게 대하려고 애씁니다.

호프는 좋은 이들과 함께 맥주를 즐기는 정겨운 마당입니다.

이 곳에서 땀 흘리는 이들을 조금만 더 존중해 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행복한 공간을 지켜주는 청춘들을.

/식담객 analogoldman@naver.com

<식담객 신씨는?>

학창시절 개그맨과 작가를 준비하다가 우연치 않게 언론 홍보에 입문, 발칙한 상상과 대담한 도전으로 주목을 끌고 있다. 어원 풀이와 스토리텔링을 통한 기업 알리기에 능통한 15년차 기업홍보 전문가. 한겨레신문에서 직장인 컬럼을 연재했고, 한국경제 ‘金과장 李대리’의 기획에 참여한 바 있다. 현재 PR 전문 매거진 ‘The PR’에서 홍보카툰 ‘ 미스터 홍키호테’의 스토리를 집필 중이며, PR 관련 강연과 기고도 진행 중이다. 저서로는 홍보 바닥에서 매운 맛을 본 이들의 이야기 ‘홍보의 辛(초록물고기)’이 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관련 태그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