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학도·고학생 전유물로 여겨졌던 검정고시가 대학 입학을 위한 학교생활기록부 세탁 경로로 변질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입 수시모집에서 학교생활기록부 위주 전형이 85%를 넘어서는 등 학생부 비중이 높아지면서 내신에 불리한 자사고·특목고와 강남 지역 고등학생들이 검정고시로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검정고시를 볼 경우 대입에서 학생부 성적을 반영하지 않는다.
4일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지난 3일 서울에서 치러진 검정고시에서 총 6,948명이 응시했다. 고졸 학력인정 검정고시에는 5,147명이 지원했고 이 중 13~19세는 2,749명(53.41%)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교육청의 한 관계자는 “학교 부적응 학생이나 내신이 좋지 않은 학생들이 학업을 중단하고 검정고시를 보는 경우가 느는 추세”라며 “검정고시 성적이 내신으로 대체되는 대학도 일부 있다 보니 최근에는 검정고시 점수를 높이기 위해 합격자들의 재응시 비중도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2014년 서울 지역 기준 1만2,871명의 고졸 검정고시 지원자 중 556명이 이미 검정고시에 합격했지만 다시 시험을 봤고 2015년에는 1만1,537명 중 810명이 재응시했다. 올해는 1만292명 중 1,016명이 재응시했다. 학령인구 감소로 해마다 지원자 수는 줄고 있지만 재응시자 수는 2년 만에 두 배가량 증가했다. 시교육청은 재응시자 대부분이 10대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전국 각 시도 교육청에서는 10대들의 재응시 비중이 높아지면서 만학도와 고학생 등의 합격률이 줄어들자 재응시를 한때 금지하기도 했지만 2012년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다시 재응시가 가능해졌다.
최근에는 내신이 낮은 자사고·특목고와 강남 지역 학생들이 학교를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선택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상대적으로 쉬운 검정고시를 일찍 끝내고 재수학원에 다니며 대학수학능력시험에 전념하기 위해서다. 일부 재수학원들은 이미 이러한 고졸 검정고시 합격자들을 새로운 마케팅 대상으로 보고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재응시자수 2년만에 2배 급증
“합격 성공사례 늘땐 확산 가속”
고졸 검정고시가 치러진 고사장마다 학원 관계자들이 찾아가 이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학원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자사고 등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검정고시에 몰리면서 검정고시생들의 수능 성적도 높아지고 있다. 전국 17개 시도별 검정고시생 국어·영어·수학 수능 등급을 보면 2014학년도 404명이던 평균 2등급 이내 인원이 2015학년도에는 494명으로 22.3% 늘었다. 특히 자사고·특목고와 강남 지역 학생들이 몰려 있는 서울의 경우 전년 대비 43.1%(56명)가 늘어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검정고시 시험에 몰리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입시전문가들은 이들의 내신 성적은 4~5등급(자사고·특목고 기준) 정도인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서울권에서 3등급 밖이면 서울 상위권 대학에 진학하기가 힘들다는 분석을 고려하면 이들이 학생부 세탁을 위해 검정고시를 이용하고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임성호 종로학원 하늘교육 대표는 “학교에 다니는 동안 나빠진 학생부를 바꾸기는 거의 불가능해 검정고시를 선택하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며 “수시에서 각 대학이 우수한 학생들을 대부분 뽑아가기 때문에 수능 위주의 정시에서는 수능 성적만 높으면 애초 기대했던 학교보다 더 좋은 대학을 갈 수 있다는 기대감도 한몫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시모집에서 내신 비중이 높아지면서 검정고시를 통한 대입을 준비하는 학생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임 대표는 “수시 체제가 강화되면서 학생부 성적을 만회하기 위해 자퇴와 검정고시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는 아이들이 늘어날 것”이라며 “이를 통한 성공사례가 늘어나면 확산 속도는 걷잡을 수 없이 빨라질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