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권홍우칼럼] 주한미군이 내정간섭에 역사 교육까지 하나

권홍우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정부 발표에 모든 국민 만족 못해"

오만한 브룩스 사령관 발언 부적절

日 반성해야 정보공유협정도 가능





“정부 발표에 모든 국민이 만족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한국 정부가 어떤 지원을 하고 주민들과 의사소통함으로써 불만과 우려를 해소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예정지인 경북 성주 군민의 반발을 어떻게 보는지에 대한 답변이다. 답변 주인공은 우리 정치인이 아니다. 빈센트 브룩스 주한미군 사령관은 지난 2일 한국국방연구원이 주최한 조찬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주지하듯이 주한미군 사령관은 유엔군 사령관과 한미연합 사령관, 주한미군 선임장교라는 직함을 동시에 갖고 있다. 군사외교를 포함해 다양한 임무를 수행한다는 뜻이지만 어떤 직함으로도 브룩스 사령관의 발언은 부적절하다.


사드 배치가 아무리 당위성을 갖고 미군의 전략 목표 중 하나라도 그의 발언은 정상 궤도를 벗어나는 것이다. 무엇보다 사드 배치는 아직 사회적 합의를 통한 국론 조정이 채 끝나지 않은 사안이다. 외국 주둔군 사령관이 성주 군민과 한국 야당의 반발을 공개적으로 ‘정부 발표에 대한 불만족’으로 평가하는 행위가 온당한가. 식민지 총독이나 점령군 사령관이라면 몰라도 우방국에 주둔하는 고위 장성이 할 언사는 아니다. 한국민과 한국 정치권에 대한 예의에도 어긋난다. 오만하다. 내정간섭으로 볼 수도 있다.

‘모든 국민을 만족시키는 정부 발표는 없다’는 언급은 한국 대통령이나 정무직 공무원인 국방부 장관이 할 수 있는 말이다. 한국군 고위 장성 누구도 정치적으로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사안에 대해 공식적으로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주한미군 사령관도 마찬가지다. 송기춘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전시에 한국군을 지휘하는 책임을 지는 연합사 사령관이라면 한국 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외국인이라도 헌법에 명시된 군의 정치적 중립성을 존중하고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국군의 사명을 명시한 대한민국 헌법 제5조 2항은 군의 정치적 중립을 강조하고 있다.


브룩스 사령관은 한 걸음 더 나갔다. 한일 정보공유 협정의 체결을 촉구하는 듯한 발언에 큰 비중을 뒀다. “역사적으로 적이었던 국가들, 깊은 반감의 골이 생겨 있는 국가들 간에 신뢰를 재형성하는 것이 굉장히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운을 떼며 “미사일 조기경보 분야부터 시작해 정보공유에 숨을 불어넣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금 역내(한미일)는 정보공유가 취약하고 국가 간 신뢰가 떨어지고 있기 때문에 충분히 강할 수 있는 것을 못 갖추고 있는데 계속 발전해나가야 할 부분”이라고도 덧붙였다.

관련기사



브룩스 사령관의 생각에 기본적으로 공감하지만 일에는 순서가 있다. 명분도 필요하다. 한국과 일본이 진정으로 가까워질 수 있는 현실이 아닌 가운데 미국의 움직임이 걱정스럽다. 한국 대중의 의사에 반하는 한일 간 군사 협력을 공고히 하려는 미국의 의도는 새로운 반미 감정을 형성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2년 전을 떠올려 보자. 전임 주한미군 사령관인 커티스 스캐퍼로티 대장이 “한국에 사드 배치가 필요하다”고 처음 말한 뒤 2년 만에 현실로 나타났다는 점을 감안하면 미국의 군사외교력은 한국과 일본 간, 한국·미국·일본 3개국의 전력을 종합화하는 데 치중할 것으로 보인다.

돌아올 보상이 아무리 크더라도 한국과 일본의 구원(久怨)은 쉽게 풀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일본이 과거사를 뉘우치지 않는 한 원한 해소도 협력도 요원하다. 미국에 묻는다. 만약 독일이 2차대전의 침략과 전쟁범죄를 반성하지 않는다면, 독일이 해군 함정에 하켄크로이츠(나치 깃발)를 버젓이 달고 다닌다면 미국은 용납할 수 있나. 영국인들이 조지 워싱턴 미국 대통령을 역적이라고 비난하고 독립전쟁 당시 미국을 배신한 베니딕트 아널드 장군을 아메리카의 진정한 신민(臣民)이라고 미화하는데도 친구가 될 수 있겠나.

일본이 과거사를 사죄한다지만 미국에만 그럴 뿐이다. 침략의 피해자인 한국과 중국에 대해서는 역사적 사실마저 왜곡하는 판이다. 한국인에게 일본을 용서하고 친구가 되라는 조언은 유대인에게 아돌프 히틀러를 용서하라는 것과 똑같은 얘기다. 미국의 적극적인 중재로 지난해 말 전격적으로 처리된 한일 위안부 협상마저 받아들이지 못하는 한국인도 많은 상황에 관계를 진일보하라고? 어림없는 얘기다.

미군 장성들이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함께 간다(We go together!)!’를 외친다. 왜 아쉬울 때만 같이 가자고 하나. 한국형 전투기(KF-X) 기술 이전에는 그토록 매정하더니만. 함께 가는 데는 이해와 배려가 전제돼야 하는 법이다. 한국인들은 미국과는 기꺼이 함께 가겠지만 반성하지 않는 일본과는 그렇게 못한다.

/권홍우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권홍우 논설위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