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백상논단] 최저임금 결정 과정이 남긴 상처와 해법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노동법 전공

노사, 역대 최장 회의기간 내내

타협 없이 최초 요구안만 고집

표결도 파행...존재이유 부정

최저임금위 독립성 보장하고

지역별 차등화 등 고려해봐야



시급 6,470원. 주 40시간 기준 월급은 135만2,230원. 내년 최저임금이다. 결정되기가 무섭게 불만과 한숨 소리가 이어진다. 물가를 생각하면 적어도 시급 1만원은 돼야 한다는 노동계의 절규가 가슴 아프다. 경제 상황만 보면 최저임금 동결도 모자랄 판이라는 경영계의 하소연도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상황이 이러할진대 최저임금에 ‘정답’이 있을 리 없다. 중요한 것은 결정 과정이다. 노동계와 경영계 그리고 공익 대표들이 함께 고민하고 합의해 내린 결정이어야 한다.

최저임금 결정 과정의 난맥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래도 이번에는 심했다. 역대 최장이라는 회의 기간 내내 타협은 없었다. ‘보여주기식’ 퍼포먼스뿐이었다. 노사 대표는 오로지 자신의 최초 요구안만을 고집했다. 수정안 제시는 아예 없었다. 표결 때도 그랬다. 근로자위원들은 모두 퇴장한 상태였고 소상공인을 대표하는 사용자위원 2명도 불참했다. 마치 예상이나 했다는 듯 공익위원들은 뒷짐만 졌다. 이로써 최저임금위원회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부정하고 말았다. 오죽하면 국회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한 이때 최저임금 결정을 국회에 맡기자는 얘기까지 나왔을까. 대충 덮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첫째, 최저임금위원회를 제3의 독립기구로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정부 부처나 정치권에 위원들이 휘둘려서는 안 된다. 노동계와 경영계의 눈치를 살펴서도 안 된다. 소신껏 결정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지금처럼 조직의 이해 대변자 역할에만 몰두하다가 ‘보란 듯’ 퇴장하고 ‘회피하듯’ 불참하고 ‘떠밀리듯’ 결정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둘째, 예측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해마다 이맘때면 막연한 기대와 불안, 그리고 실망을 반복하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다. 최저임금 ‘결정 공식’을 미리 구체화해둘 필요가 있다. 5년 단위로 목표액과 단계적 인상률을 미리 정해두는 방법도 있다.


셋째, 최저임금 다원화가 필요하다. 지역에 따라 생계비가 천차만별이다. 그런데도 최저임금이 똑같다면 그것이 이상한 일 아닌가. 일본이 좋은 예다. 최저 ‘임금’이 아니라 ‘기준액’을 정한다. 실제 금액은 지역별로 달리 정해진다. 올해 도쿄 최저임금은 907엔이고 미야자키는 693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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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최저임금의 초점은 격차 해소다. 지난 2015년 뒤늦게 독일이 최저임금제를 도입한 것도 실은 산별협약의 사각지대에 놓인 비정규직의 보호 때문이다. 우리도 비정규직 최저임금을 따로 정하면 어떨까. 정규직 최저임금은 동결하되 비정규직 최저임금은 과감하게 높여보는 것이다. 비싼 비용으로 비정규직을 쓸지 싼 비용으로 정규직을 쓸지 한 번쯤 고민하도록 해야 한다.

최저임금은 ‘인간의 노동력’에 대한 가치 평가다. 단순하게 경제 원리만으로 결정될 수는 없다. 마트에 쌓인 물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최저임금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사회의 눈높이다. 정치적 수준을 가늠하는 ‘바로미터’인 셈이다.

방향은 분명하다. 최저임금은 ‘충분히’ 올라야 한다. 다만 지킬 수 있어야 한다. 지키지도 못할 최저임금이라면 1만원이든 십만 원이든 아무 소용이 없다. 그건 허무한 정치구호일 뿐이다. 그러자면 확신이 필요하다. 최저임금마저 어기는 사업장은 우리 경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며 아예 퇴출시키는 편이 낫다는 확신 말이다. 물어보고 싶다. 지금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머리는 차갑고 가슴은 뜨겁게.’ 최저임금 논의는 그래야 한다. 연례행사처럼 반복되는 정치적 퍼포먼스는 노사 모두에 상처만 남길 뿐이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노동법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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