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개막식을 보면, 처음 들어보는 나라가 꽤 있습니다. 어디에 있는지 지도를 찾아봐야 알 수 있는 나라, 2, 3명만 출전한 나라, 전쟁이나 분열속에 있는 나라, 심지어 난민들로만 이뤄진 선수단도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처음 출전했던 1948년 런던 올림픽에서는 세계가 우리를 그렇게 낯설어했겠지요. 가난한 신생독립국으로 출전비용조차 마련하기 힘들었던 우리나라 첫 올림픽 선수단은 무려 18일만에 런던에 도착했다고합니다. 리우 올림픽에도 예전의 우리처럼 참가 자체가 도전인 나라도 있을겁니다. 1988년, 캘거리 동계올림픽 봅슬레이 종목에 출전한 자메이카팀도 그랬습니다. 무모해보이는 이들의 도전을 그린 <쿨러닝>(1993년, 존 타틀타웁 감독)은 올림픽 정신의 모든것을 유쾌하게 보여줍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육상 100미터에 출전하는 것이 목표였던 데리스(리온)는 선발대회에서 동료인 주니어(로울 D. 루이스)의 실수로 넘어지면서 꿈이 좌절됩니다. 하지만 동계올림픽 종목인 봅슬레이에 대해 알게되고 까칠하지만 박력있는 율 브레너(메릭 요바), 착한 부잣집 아들 주니어, 재미있는 친구인 상카까지 모아 팀을 만듭니다. 봅슬레이가 뭔지도 모르는 이들이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던가요. 봅슬레이 금메달리스트였던 아이브(존 캔디)가 자메이카에 살고있을줄이야! 삼고초려 끝에 아이브를 코치로 모신 이들은 밤낮으로 강훈을 자청합니다. 가난한 이들은 주니어의 차를 판 돈으로 간신히 비용을 마련, 카나다 캘거리에 도착합니다. 생전 처음 겪는 추위는 호환마마보다 무섭고 다른팀 연습용 봅슬레이는 내놓기도 부끄러울 지경이지만 열정과 실력으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자메이카 국민들의 열렬한 응원도 받습니다. 하지만 결승전에서 이 낡은 봅슬레이는 문제를 일으키며 뒤집어지고맙니다. 꿈은 꿈으로 끝나는가 싶던 그 순간, 네명의 자메이카 선수들은 봅슬레이를 들어올립니다.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 속에서 결승선을 통과합니다.
악조건 속에서도 유머를 잃지않는 낙천적인 자메이카인들지만 던지는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선수시절, 이미 금메달리스트였음에도 부정을 저지른 아이브에게 왜 그랬냐고 데니스가 묻자 아이브가 말합니다. “그때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이겨야만했으니까. 금메달이 없어서 부족함을 느낀다면 금메달이 있어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으니까” 그렇죠. 혈기왕성한 젊은 시절, 아니, 죽는 그 순간까지도 인생의 중요한 것들을 우리는 얼마나 깨달을까요. 그럼에도 우리는 또 얼마나 타인의 잘못에 가혹한지요. 인상적인 장면은 또 있습니다. 올림픽에 출전한 자메이카팀은 봅슬레이 강국인 부자나라의 모든 것을 부러워하고 따라합니다. 하지만, 성적이 오르지 않죠. 그때 상카가 말합니다. “우리는 자메이카팀이야! 자메이카 스타일로 해보자고!” 레게리듬을 타며 즐겁고 유연한 자메이카 스타일로 봅슬레이를 타면서부터 그들은 정말 좋은 성적을 냅니다. 왕도는 없습니다. 자신만의 스타일이 왕도인거죠.
노력은 헛되지 않는다는 것, 감동은 시련의 크기에 비례한다는 것, 팀웍이 모든 난관을 이겨낸다는 것, 100%집중해야만 무언가를 이룰 수 있다는 것, 개인의 운명은 국가의 운명과 같이 간다는 것...너무 교과서적이어서 자주 잊어버리는 진리가 한자리에서 증명되는 것이 올림픽입니다. 206개국, 약 1만여명의 국가대표 선수 한 명 한 명은 이미 드라마의 주인공들입니다. 쿨러닝! 무사히 완주하기만을 뜨겁게 응원합니다.
KBS1라디오 <함께하는 저녁길 정은아입니다>연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