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마차, 가솔린차, 그리고 전기차

한기석 논설위원

피처폰이 스마트폰 된 것처럼

전기차로 가득한 세상 머잖아

생존 위해 '창조적 파괴' 나서야





미국에서 테슬라 전기차를 시승해본 사람과 지난주 저녁을 함께했다. 마침 전기차의 대명사인 테슬라모터스가 오는 11월께 한국에 매장을 낸다는 소식을 들은 날이었다. 그에게 타본 소감을 묻자 돌아온 대답은 “피처폰에서 스마트폰으로 갈아탄 느낌”이었다. 그가 전한 ‘모델S’의 승차감은 최고급 세단, 가속 성능은 슈퍼카 수준이었다. “루디크러스(터무니없는) 버튼을 눌러 고성능 모드로 바꾸자 시속 100㎞까지 속도가 오르는 데 2.9초 걸렸다. 차 가격이 7억원대인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12기통, 6,500㏄)와 맞먹는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정말 많은 사람이 지적하는 충전 환경은 문제 될 것이 없단다. 급속 충전기는 앞으로 계속 늘어나고 충전 속도로 빨라진다. 완속 충전기는 정부가 모든 아파트에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모델S는 한 번 충전하면 400㎞ 이상 달리니까 1주일에 한 번 집에서 충전하면 된다. 보급형인 ‘모델3’은 지난 3월 예약을 받은 지 1주일 만에 32만대 주문을 넘겼다. 자동차 단일 품목으로 받은 역대 최다 주문기록으로 제품 홍보를 위한 마케팅 비용을 들이지 않고 세웠다는 점이 더욱 놀랍다. 이런 차가 한국에 상륙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마차로 가득하던 거리에 자동차가 처음 나타났을 때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 말 없는 마차라니, 괴짜들이나 타겠군.” 거리가 마차 대신 자동차로 가득해지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13년. 잠깐만, 이거 어디서 들어본 듯 귀에 익네. 맞다. 현대자동차가 요즘 내보내고 있는 텔레비전 광고 ‘말 없는 마차’ 편이다. 현대차의 첫 전기차 ‘아이오닉 일렉트릭’을 홍보하는 이 광고는 이렇게 끝난다. “곧 새로운 에너지로 달리는 이 놀라운 이동수단이 거리에 가득해질 겁니다. 새로운 시대는 늘 그렇게 한순간에 찾아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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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의 혜안에 박수를 보낸다. 마차가 자동차로 바뀌는 데 13년 걸렸으면 자동차가 전기차로 바뀌는 데 걸리는 시간은 그 이하일 것이다. 테슬라 전기차는 2008년 스포츠카 ‘로드스터’를 출시하면서 세상에 나왔다. 그로부터 13년 뒤인 2021년 내에 세상의 자동차가 모두 전기차로 바뀔 수 있다는 얘기다. 세상이 전기차로 개벽하면 이제껏 내연기관차를 만들어온 자동차회사는 어떻게 될까. 전기차로 탈바꿈하면 살 것이요 내연기관차를 고집하면 죽을 것이다. 혜안이 있는 현대차는 그날이 왔을 때 살아 있을까. 현대차가 그나마 무엇을 안 것은 다행이지만 원래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잘 일치하지 않는다.

노키아가 피처폰으로 폭풍 성장하며 세계 휴대폰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2007년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을 공개했다. 노키아는 그해 4·4분기 휴대폰 시장 점유율 40%를 기록한 부동의 1위 사업자였다. 그로부터 불과 7년 뒤 노키아는 마이크로소프트(MS)에 매각되면서 사라졌다. 노키아가 몰락한 이유는 무엇일까.

조지프 슘페터가 강조한 ‘창조적 파괴’에서 중요한 것은 창조나 파괴가 아니라 창조적 파괴를 하는 기업가다. 창조적 파괴를 하는 기업가는 기존 기업, 기존 사업에서는 나오기 힘들다. 노키아는 애플보다 먼저 스마트폰(커뮤니케이터)을 출시했다. 스마트폰 시대가 도래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성공하지 못한 것은 기존 피처폰 사업에서의 독점적 이윤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떤 기업도 확실한 이윤이 보장된 기존 사업을 부정하고 불확실성을 태생적으로 안고 있는 창조적 파괴를 쉽게 선택하지 못한다.

혈서를 써본 사람은 고작 피 몇 방울 얻기 위해 제 손가락에 칼을 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안다. 창조적 파괴는 혈서 수준이 아니라 지금 잘 뛰는 심장을 들어내고 아직 안전성을 검증받지 못한 인공 심장을 이식하는 수술을 스스로 깬 상태에서 하는 것이다. 노키아가 하지 못한 이 수술을 현대차는 할 수 있을까. /한기석 논설위원 hanks@sedaily.com

한기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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