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말 금융권 최고경영자(CEO) 인사의 큰 장이 열리는 가운데 금융권 내부에서 벌써 자리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일부 현직들이 연임을 위해 뛰는 가운데 정권 말기를 앞두고 마지막에 ‘한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관료들의 움직임도 예사롭지 않다. 금융공기업의 한 CEO는 “홍기택 전 산업은행장 사태 등으로 정피아의 위세가 다소 위축된 가운데 퇴직을 앞둔 관료들이 무섭게 뛰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고 말했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다음달 신용보증기금과 한국거래소를 시작으로 한국자산관리공사(11월), 예탁결제원(11월), 기업은행(12월), 우리은행(12월), 기술보증기금(내년 1월), 수출입은행(3월) 등의 CEO 임기가 만료된다. 신한금융이나 하나금융 역시 내부적으로 행장이나 회장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지만 이들 금융사는 지배구조가 탄탄하고 내부 경쟁을 통해 CEO가 정해지는 만큼 인선 과정을 별도로 봐야 한다.
외풍에 취약한 금융공기업 CEO 인사판에서는 전반적으로 관료들의 세가 강해 보인다. 다음달 말 임기가 끝나는 신보 이사장과 11월 임기가 완료되는 한국자산관리공사 사장 자리에 문창용 전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등 기재부 전현직 관료들이 이들 2개 금융공기업 사장 자리를 꿰찰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렇게 되면 예탁결제원 사장은 자연스럽게 금융위원회 몫으로 배정될 가능성이 크다. 기술보증기금의 경우 현재 산은 출신이 이사장을 맡고 있는데 이 역시 관료 출신 또는 정피아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자본시장의 수장이라는 상징성이 있는 한국거래소는 최경수 이사장의 연임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점쳐진다. 자본시장법 개정 이슈가 마무리되지 않은데다 거래소 이사장은 새 정부 출범과 함께 바뀌는 것이 그간의 관례였기 때문이다.
가장 큰 관심이 모이는 곳은 우리은행장과 기업은행장 자리다. 민영화 숙제를 해결해야 하는 우리은행은 올해 말까지 민영화가 성공한다면 이광구 행장의 연임 가능성이 거론된다. 최근 두 차례에 걸쳐 내부에서 행장을 배출한 기업은행의 경우 셈법이 복잡하다. 퇴직 관료들에게는 우리은행보다는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한 자리이기 때문에 노리는 인사들이 많다. 다만 권선주 행장이 유일한 여성 행장인데다 현 정권과의 관계가 나쁘지 않다는 점을 고려할 때 연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내년 3월 임기가 만료되는 수출입은행장은 교체가 거의 확실시된다는 게 금융권 안팎의 전망이다. 정피아 인사로 꼽히는 이덕훈 행장 체제에서 수은은 조선업 구조조정 쇼크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한편 각 금융협회의 2인자라 볼 수 있는 알토란 같은 전무 자리는 관료 출신들이 모두 꿰차는 분위기다. 생명보험협회는 최근 신임 전무로 송재근 전 금융위원회 과장을 앉혔고 은행연합회도 금융위 출신인 홍재문 한국자금중개 부사장이 내정됐다는 이야기가 나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