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로 여는 수요일] 여름 끝물

- 문성해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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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문 씨앗들을 품은 호박 옆구리가 굵어지고


매미들 날개가 너덜거리고

쌍쌍이 묶인 잠자리들이 저릿저릿 날아다닌다


얽은 자두를 먹던 어미는 씨앗에 이가 닿았는지 진저리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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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을 품은 사마귀들이 뒤뚱거리며 벽에 오른다

목백일홍이 붉게 타오르는 수돗가에서

끝물인 아비가 늙은 오이 한 개를 따와서 씻고 있다

아침 이슬 털며 찾은 맏물 오이가 기쁨의 탄성을 자아낸다면, 저녁 서리 속 따낸 작고 꼬부라진 끝물 오이가 풍기는 것은 쓸쓸함이다. 비록 씨앗 속 유전자는 내일을 품고 있지만 그것을 생산한 어미의 생애는 저물어 어제가 될 것이다. 끝물을 내놓은 것들은 옆구리가 굵어지고, 날개가 너덜거리고, 온몸이 저릿저릿하고, 이가 시리고, 걸음 뒤뚱거리게 된다. 저 시의 마지막 구절을 고쳐 읽어도 쓸쓸함은 가시지 않는다. ‘늙은 아비가 끝물 오이 한 개를 따와서 씻고 있다’고.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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