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1년 2월24일 미군은 쿠웨이트를 점령한 이라크군에 대해 전면 공격을 개시했다. 100만 이라크군을 감안하면 단일 전투로는 최대 병력이 격돌한 전투였다. 미군이 최신형 M1에이브럼스 전차로 무장했다지만 이라크도 소련제인 동급 T-72를 주력 전차로 내세웠다.
그런데 막상 전투가 벌어지자 전투는 싱겁게 끝나버렸다. 이라크군이 상상하지 못한 우회 기동전술 때문이었다. 사막에서는 모래폭풍이 일 때마다 지형이 바뀌어 길을 잃기 일쑤다. 그러나 미군은 신형 위치식별기(GPS)를 활용, 이라크군의 은폐·엄폐 장소를 손바닥 보듯 했다. GPS를 전쟁 무기로 쓸지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한국의 온라인 게임 업계는 허구한 날 창·칼·폭탄 등의 무기로 상대 진영을 파괴하는 게임 제작에 함몰돼 있다. 그러던 차에 ‘포켓몬 고’가 벼락같이 나타났다. GPS를 게임에 활용할지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7월14일 매스컴은 중소기업청 차장이 중국 선전에서 열린 ‘제9차 APEC 중소기업 기술교류 및 전시회’에 참석했다고 보도했다. 한국의 스마트 공장 보급·확산을 주제로 기조연설을 했으며, 한국 스타트업관을 방문해 참가 기업들을 격려했다는 부연 설명까지 달았다.
하지만 참가 기업 측 설명은 다르다. 이번 대회에서는 1,126개 기업 가운데 29개 기업이 최우수 혁신기술기업으로 선정됐으며 한국도 공간에너지연구회(Korea Space Energy Co.) 등 3개 기업이 포함됐다. 그럼에도 중기청 측은 우수기업 발표 후에도 선정된 우리 기업들을 돌아보지 않은 것은 물론 지금껏 아무런 관심도 표명하지 않고 있다.
공간에너지란 전혀 생소한 것도 아니다. 물론 뉴턴식 물질에너지가 아닌 공간 속의 에너지를 학문의 대상으로 다룬다고 해서 뉴턴의 후예들이 지배하는 과학계로부터 이단 취급을 받고 있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새로운 과학이나 종교·철학은 늘 그렇게 출발해오지 않았던가. 지동설은 물론이고 예수조차 기득권 세력으로부터 이단 취급을 받았다. 붓다의 무아론(無我論) 또한 힌두교에게는 그저 사이비였을 뿐이다.
국내에서도 1997년 한국 과학기술계에 초석을 쌓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공간에너지에 관한 연구가 시도된 적이 있다. 당시 정문조 책임연구원을 포함 8명의 정예들이 참여한 ‘공간에너지 기술 개발을 위한 기획조사연구’ 보고서가 정식 제출된 바 있다.
연구단은 보고서를 통해 “이런 신과학기술들에 대한 이론 체계가 확립되고 활용방안이 개발돼 실용화될 경우 그 파급효과는 민간 부문에서부터 국가안보를 위한 기술에 이르기까지 가히 혁명적”이라면서 초효율 에너지, 신약개발, 상온핵융합, 기상조절 및 대기정화에 이르는 다양한 응용 분야를 지목했다. 왜 이런 연구과제가 기존 학계로부터 외면당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래도 민간에서나마 연구의 맥이 끊어지지 않고 지금껏 이어져 온 데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금 정부의 한 해 연구개발(R&D) 예산이 19조원에 이른다. 산업 전반의 경쟁력 추락을 막고 신성장동력을 찾기 위한 것이라는 명분에도 불구하고 이 막대한 세금은 그저 과학계의 나눠 먹기나 산업 흐름과 동떨어진 연구로 낭비되는 실정이다. 그에 반해 공간에너지 연구 같은 민간의 처절한 노력은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다.
설령 공간에너지 연구에 대한 정부의 R&D 지원이 아무런 구체적 성과를 내지 못하고 끝난다 하더라도 기존 연구소들의 나눠 먹기와 무슨 차이가 있을까. 설령 현대판 연금술로 끝난다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어떤 새로운 학문이나 기술혁명이 탄생할지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최소한 R&D에서 기회의 평등은 이뤄져야 마땅하다. 이것이 창업기업들을 돌보고 키우는 중소기업청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21세기 화두인 4차 산업혁명은 불가측성과 불연속적 도약을 특징으로 한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여전히 도요타의 가이젠(改善)이 상징하는 제조업식 사고에 머물러 있으며 어떤 새로운 아이디어나 모험에도 문을 굳게 걸어 닫은 채 외면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러다가는 머지않아 공간에너지가 신성장의 돌파구가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라는 자조 섞인 한탄이 나올지 모른다. shinwo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