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저축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5위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불안한 노후를 대비하기 위해 가계가 허리띠를 졸라맨 결과로 풀이된다. 이에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주장한 ‘저축의 역설’이 한국에서 실현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는 개인이 미래를 위해 소비를 줄여 저축을 늘리는 합리적인 행동을 하지만, 경제 전체적으로는 내수를 줄이고 결국 불황으로 연결되는 것을 말한다.
21일 기획재정부 등 관련 부처에 따르면 지난해 가계 저축률은 8.82%였다. 2012년 3.9%에서 2013년 5.6%, 2014년 7.18%를 거쳐 4년 만에 약 5%포인트가 오른 8%대로 올라섰다. OECD 회원국 중 우리보다 높은 곳은 스위스(19.96%), 룩셈부르크(17.48%), 스웨덴(16.78%), 독일(9.93%) 뿐이다. 갈수록 빨라지는 고령화, 노인빈곤 문제 등이 사회적 관심사로 부각되며 각 경제주체들이 소비보다 저축을 늘린 결과다.
이는 ‘저축의 역설’을 초래할 것으로 우려된다. 이전에는 가계가 저축을 하면 기업은 은행으로부터 이 돈을 빌려 투자를 하고 고용이 늘어나 가계 소득도 증가하는 선순환이 구축됐다. 하지만 지금은 기업의 투자 의지가 불투명해 선순환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가계 소비가 줄며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실정이다.
모든 연령층 중 가장 왕성하게 소비활동을 하는 40대 인구도 줄어들며 중장기적으로 소비가 타격을 입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통계청 인구 추계에 따르면 40대 인구는 2011년 853만 3,000명을 기록한 뒤로 계속 축소되고 있다. 40대는 내 집을 마련하고 자녀 교육비 지출이 많아 생애 주기상 가장 많은 소득을 벌어들이면서 소비를 가장 많이 하는 계층이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최근 10년 간 가계의 소비성향이 상당히 빠른 속도로 떨어지고 있다”며 “예전 일본이 장기침체로 내수부진을 겪을 때보다 더 빠르다”고 우려했다. 그는 “한국이 수출과 제조업 중심으로 성장해온 만큼 소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저축이 미덕이라는 인식이 남아있다”며 “비싼 것을 사면 소비세를 과하게 무는 징벌적 제도도 있는데 이런 것들을 고쳐 소비를 장려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세종=이태규기자 classic@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