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비 "116년만의 골프 金…가족들의 응원이 큰 힘 됐죠"

“고생했다. 고생했어…”

필드에서는 아무런 표정 없이 날카로운 눈빛을 보이던 ‘골프 여제’도 가족 앞에서는 순한 양이 됐다. 23일 새벽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박인비(28·KB금융그룹)는 입국장에 나와 있는 가족들을 보자마자 반가움을 감추지 못했다. 116년 만에 열린 올림픽 여자 골프 종목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박인비는 손수 손녀에게 꽃목걸이를 걸어주러 나온 할아버지 박병준(84)옹을 얼른 끌어안았다. 오랜 비행 끝에 다소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던 박인비는 가족들의 얼굴을 보자마자 언제 피곤한 적이 있었냐는 듯 시종일관 밝은 표정으로 인사를 나눴다. 박인비는 “대회 전 마음고생도 많이 하고 힘들어했는데 가족들이 옆에 있었기에 올림픽에 나가야겠다는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이렇게 좋은 성적을 올리고 많은 분이 환영까지 해주시니 이제야 금메달을 땄다는 실감이 나는 것 같다”며 환하게 웃었다.

박인비의 말처럼 ‘골든 그랜드슬램’은 가족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할아버지 박병준옹은 많은 나이에도 손녀의 경기가 있을 때면 모든 홀을 돌며 손녀를 응원한다. 박인비가 골프를 시작하게 된 것도 할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3대가 모두 골프를 했으면 좋겠다는 할아버지의 말에 10세 때부터 골프채를 잡기 시작한 박인비다. 지난 2014년 박병준옹이 위암 수술을 받았을 때 박인비가 자신이 우승하면 할아버지 수명이 1년씩 늘어난다는 생각으로 더 열심히 했다는 이야기는 그의 할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엿볼 수 있는 유명한 일화다. 손녀를 마중 나온 입국장에서 박병준옹은 한참 동안 손녀를 끌어안고 “내 손녀였는데 이제는 대한민국의 딸이 됐다. 정말 자랑스럽다”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 박건규(55)씨와 김성자(53)씨도 빼놓을 수 없는 ‘골프 여제’의 조력자들이다. 올 시즌 손가락 부상 때문에 많은 대회에 출전하지 못한 박인비는 올림픽에 출전하지 말고 후배들에게 자리를 물려주라는 일부 여론의 질타 때문에 리우행을 망설였다. 그런 그를 잡아준 사람이 부모들이었다. 박인비는 우승 후 가진 인터뷰에서 부모에 대한 고마움을 전했다. 그는 “가족들이 올림픽 출전을 원했고 그 응원과 격려가 올림픽 무대에 나서는 데 큰 용기를 줬다”며 금메달의 공을 부모에게 돌렸다.



박인비의 가장 큰 조력자는 2년 전 결혼한 남편 남기협(35)씨였다. 대회 전 박인비의 떨어진 경기 감각을 끌어올리기 위해 함께 강훈련을 마다하지 않았다. 올림픽 기간 박인비가 있던 어느 곳에서도 남편은 묵묵히 그녀의 뒤에서 내조를 아끼지 않았다. 박인비는 “남편은 내가 힘들 때마다 항상 옆에서 나를 일으켜 세워준 소중한 존재”라며 “내가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도록 지지해주는 큰 버팀목인 남편이 있어 정말 행복하다”고 말했다.

국민들의 성원과 가족의 남다른 도움을 받아 명실공히 세계를 대표하는 ‘골프 여제’로 우뚝 선 박인비. 당분간 박인비는 국내에서 휴식을 취하며 부상 부위인 왼쪽 엄지에 대한 정밀 검사와 재활에 집중할 예정이다. 올림픽 기간 통증을 참고 경기를 치른 탓에 염증이 생겨 치료와 재활을 병행해야 한다. 이런 박인비의 상태 때문에 ‘시즌 아웃’에 대한 우려가 있지만 박인비는 “9월에 열리는 LPGA 메이저대회 ‘에비앙 챔피언십’에는 몸 상태만 허락한다면 꼭 출전하고 싶다”며 복귀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다.

박인비는 올림픽 2연패에 대한 욕심도 드러냈다. 그는 “2020년까지 내가 선수 생활을 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올림픽 2연패는 선수로서 놓치기 싫은 목표”라고 말했다.

/영종도=이종호기자 phillie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