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로 여는 수요일] 노거수老巨樹

- 박노해 作





나는 이제 속도 없다


빛나는 나이테도 없다

안팎을 들락이는 바람 소리뿐

어느 하루 나 쓰러진다고

기뻐하지 마라

얼마나 많은 해와 달이

여기 등 기대앉은 사람들의

한숨과 이야기들이

나와 함께 사라지는 것이냐

어느 하루 나 쓰러진다고

슬퍼하지 마라

이 한 몸 사라진 텅 빈 자리에

시원한 하늘이 활짝 트이고

환한 여백이 열리지 않느냐

온몸으로 지켜온 내 빈자리에

이슬이 내리고 햇살이 내리고


새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이 걸어올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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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 년 살아온 노거수의 가슴이 텅 비었구나. 평생 쓴 나이테 자서전을 바람의 도서관에 기증하였구나. 항상 높은 곳을 연모하였으나 이제 낮은 곳에 다다를 준비가 되었구나. 가지를 떠돌이새들의 게스트하우스로 내어주고, 열매로 무상급식 일삼더니 제 몸을 통째로 땅의 제단에 내놓을 참이구나. 어느 하루 당신이 쓰러지면 슬퍼하겠다. 하나의 세계가 무너지는 것이므로. 어느 하루 당신이 쓰러지면 기뻐하겠다. 또 하나의 세계가 탄생하는 것이므로.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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