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보호무역 대응시간 촉박…"60분에 풀던 시험, 10분만에 풀어야 할판"

'수입규제 정보 교류회'서 본 기업 목소리

각국 까다로워지는 무역규제 정책

민·관 팀플레이 등으로 뚫어야

전문가 "무역규제 사후 대응보단

사전 시장동향 모니터링이 중요"

25일 서울시 삼성동 섬유센터에서 산업통상자원부 주최, 한국철강협회·한국석유화학협회·한국섬유산업협회·한국제지연합회 주관으로 열린 ‘수입규제 대응사례 및 정보교류회’ 참석자들이 김태익 리인터내셔널법률사무소 이사의 발표를 듣고 있다. /이종혁기자25일 서울시 삼성동 섬유센터에서 산업통상자원부 주최, 한국철강협회·한국석유화학협회·한국섬유산업협회·한국제지연합회 주관으로 열린 ‘수입규제 대응사례 및 정보교류회’ 참석자들이 김태익 리인터내셔널법률사무소 이사의 발표를 듣고 있다. /이종혁기자




“예전 미국과 유럽연합(EU)이 무역규제를 가할 때 진짜 목표는 중국이었어요. 하지만 이제는 한국도 무역규제 공격을 정면으로 받는 나라가 됐습니다.”


25일 서울시 삼성동 섬유센터 17층. 박원 삼정KPMG 이사의 말에 이곳에 모여 있던 사람들 사이에 일순 긴장감이 돌았다. 박 이사는 “미국 상무부는 한국 철강업체들에 점점 무역규제를 까다롭게 적용하고 규제에 대비할 시간적 여유도 주지 않고 있다”며 “상무부를 상대한 업계 관계자 사이에서는 ‘60분 동안 보던 시험을 이제 10분 만에 풀라고 던져주는 분위기’라는 말도 많다”고 전했다. 갈수록 강화되는 각국의 보호무역주의를 생생히 드러내는 발언이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날 섬유타워에서 무역규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우수 대응사례를 공유하는 교류회를 열었다. 철강·석유화학·섬유·제지 등 한국의 수출을 떠받드는 산업 관계자와 정부 실무자들이 모여 규제를 극복한 과거 우수 사례를 찾고 대응 실마리를 모색하자는 것이다. 실제로 리인터내셔널법률사무소의 집계를 보면 지난 1995년부터 지난해까지 한국은 전 세계에서 중국(820건·반덤핑 조치 기준) 다음으로 많은 225건의 무역규제 공격을 받았다. 김태익 리인터내셔널 이사는 “중국·인도는 자국 내 관련 산업을 육성할 목적으로 한국을 공격해왔다”며 “이제는 미국·EU마저 가세하면서 한국의 설 자리는 위태로워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국내 업계와 정부가 주목하는 우수 대응사례는 2014년 휴대폰 업계에 대한 터키 정부의 규제 시도다. 터키는 자국 전자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한국산 휴대폰에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를 취하려고 했으나 한국 기업이 철저한 대응논리를 세워 반대하면서 이를 철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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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이 사활을 걸었던 중국의 한국산 테레프탈산(TPA) 반덤핑 조사 대응도 우수 사례로 손꼽힌다.

중국 업계는 TPA 자체 생산을 크게 늘리면서 강력한 경쟁자인 한국 기업에 대한 반덤핑 조사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에 기업들은 한국석유화학협회와 중국을 수십 차례 오가며 반덤핑 규제 적용 시 한국산 TPA를 공급받는 중국 업체들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논리를 일관되게 전개했다. 옛 외교통상부(현 외교부)도 이를 거들며 중국 상무부와 끈질긴 협상을 벌였다. 이 같은 노력에 힘입어 한국 기업들은 2% 미만의 낮은 반덤핑 관세를 적용받을 수 있었다. 한국과 함께 조사를 받았던 태국 업체들은 6%가 넘는 고율 관세 피해를 입었다. 윤주환 김앤장 법률사무소 이사는 “이 대응 사례는 기업들이 중국의 규제 절차·관행과 현지 화학업계의 사정을 세세히 꿰뚫고 있었던 덕분에 성공할 수 있었다”며 “한국 정부와의 팀플레이도 성공적이었다”고 분석했다.

섬유업계에서는 2013년 인도가 효성그룹과 태광 등이 생산하는 스판덱스 섬유 제품에 세이프가드를 취하려다 실패한 사례를 뽑았다. 이 조사는 현지 스판덱스 독점기업인 인도라마의 제소로 시작됐는데 국내 기업들이 한국섬유협회는 물론 외교부와도 협조해 인도 정부의 논리를 반박한 끝에 세이프가드를 피할 수 있었다. 당시 실무자로 참여했던 김 이사는 “인도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요인은 한국을 제소한 기업과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다른 현지 업체들을 움직여 협조를 이끌어낸 덕분”이라며 “한국 업체들의 공장이 많아 인도의 세이프가드 조치로 간접 피해를 볼 게 뻔했던 베트남도 한국 기업을 도왔다”고 설명했다.

이날 행사에 연사로 나선 전문가들은 각국의 무역규제를 사후에 대응하기보다는 사전에 시장 동향을 모니터링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윤 이사는 “특정 제품과 관련해 한국 기업의 수출을 규제하려는 나라는 직전 3년간 한국의 수출이 급증한 곳이거나 해당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설비를 증설한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업계 종사자들이 평소 주요 시장의 움직임을 면밀히 살펴 사전 준비 역량을 키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이번 교류회 외에도 무역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관련 업계와의 소통을 지속할 방침이다. 산업부는 다음달 해외전문가 초청 세미나, 10월 주요 업종 대상 교육회를 열고 수입규제 조치가 자주 발생하는 업종 간 교류를 확대하기로 했다. 강명수 산업부 통상협력국장은 “EU의 방향성 전기강판 반덤핑 조사, 중국 아크릴섬유 반덤핑 조사 등 최근 민관이 적극적으로 대응해 우리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한 사례가 다수 있다”며 “우리 기업이 수입규제 절차상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제소 초기 단계부터 민관이 긴밀하게 협조해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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