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녹>인류 문명의 조용한 적 ‘녹’의 민낯을 드러내다

■조나단 월드먼 지음, 반니 펴냄



‘인디펜던스 데이’, ‘클로버필드’, ‘투모로우’. 이들 영화의 공통적인 장면이 하나 나오는데, 그건 바로 미국을 상징하는 자유의 여신상이 외계인 또는 자연재해에 의해 파괴된다는 점이다.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처럼 보이는 자유의 여신상 붕괴가 실제 일어날 뻔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자유의 여신상을 위협한 존재는 외계인도 자연재해도 아닌 바로 녹이었다.

자유의 여신상 관리 책임자인 데이비드 모핏이 지난 1980년 녹으로 인해 자유의 여신상이 심각한 상황에 처한 사실을 발견한 이후 미국에서는 자유의 여신상 복원사업이 이뤄졌다. 복원된 여신상은 녹과의 싸움에서 인간이 승리를 거둔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신간 ‘녹’은 미국에서 녹과의 정면대결을 선포한 가장 유명한 싸움인 ‘자유의 여신상 복원사업’을 소개하며 시작한다. ‘녹’은 우리 주위를 온통 둘러싸고 있는 금속 아래에서 시시각각 현대 문명을 위협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동안 전혀 알려고 하지 않았던 녹의 모든 것을 적나라하게 알려준다.


녹의 공격은 자유의 여신상에 머물지 않는다. 철로 만들어진 모든 것들은 녹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 녹은 다리를 무너뜨리고, 핵발전소의 반응기를 잠식하며, 핵폐기물 용기에 구멍을 내는 등 부지불식간에 우리 목숨을 위협하기도 한다. 동서 간 냉전이 극으로 치닫던 무렵 창고에 쌓아둔 대다수 핵무기가 녹 때문에 무용지물이 됐다. 미국의 가장 큰 송유관이 녹에 점령당했을 때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원유 생산량까지 재조정해야만 했다. 또 녹은 군대에도 침투해 F-16 전투기와 헬리콥터가 공중에서 충돌하게 만들었고, 상업용 비행기가 비행 도중 공중 분해된 사고도 녹 때문에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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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인류의 문명을 소리 없이 위협하는 녹에 대해 우리는 왜 이토록 둔감한 것일까. 저자는 녹은 토네이도나 산불, 눈보라, 홍수보다 느려서 돌부처처럼 가만히 앉아 계속 쳐다보지 않는 한 그 존재를 알 수 없고 레이더에 잡히지도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녹은 인간에게 그 어떤 자연재해보다 많은 손해를 입힌다. 미국에서 한 해 동안 녹 때문에 발생하는 손실액은 GDP의 3%인 4,370억 달러로 스웨덴의 GDP보다 많다. 우리나라 역시 설치된 지 20년 이상 지난 상수도의 관로 노후 현상(녹)이 급속도로 진행돼 연간 6,059억 원의 돈이 새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녹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스테인리스강이 개발됐지만, 이 역시 녹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이 책으로 반즈앤노블 서점 ‘최고의 신인 작가’에 선정되기도 저자는 현대 문명에서 녹을 방지하려는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것에 대해 “정장을 빼입고 소나기를 맞으면서 20달러짜리 지폐를 열심히 찢는 행위와 같다”고 말한다.

책은 우리 주위를 온통 둘러싸고 있는 금속 아래에서 시시각각 현대 문명을 위협하는 녹에 대해 다방면으로 조명하면서 대처 방법을 생각해보도록 만든다. 저자에 따르면 개개인의 삶을 넘어 인류의 문명을 위협하는 녹에 대해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 교량 도색을 페인트에서 이온도금으로 바꾸고 송유관 점검을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자주 하고 녹을 예방하는 데 많은 예산을 지원한다면 저자의 말처럼 “녹 문제는 우리가 죽기 전에 확실한 결과를 볼 수 있다”. 1만8,000원

박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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