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로 여는 수요일] 그림자


그림자-박재연 作

그늘진 곳이면 어디든 따라나서는

바닥만 고집하는 낮은 사람

수저를 들다 말고 문밖의 당신을 바라보면

충견처럼 내 신발을 품고 엎드린다

그가 있어 세상은 낯설지 않고

혼자 해결해야 하는 일에 힘이 실린다

눈물 글썽이는 젖은 상대를 만나면

슬그머니 물러나 몸을 감추지만

뙤약볕으로 이글거리는 상대를 만나면

자신을 더욱 분명히 하는 사람

그도 나처럼 나이가 들어

키도 줄어들고 허리가 뚱뚱하다

오늘은 늙은 그가 나를 데리고

팔이 부러진 목련에게 문병 가자고 한다

그가 말없이 그래왔던 것처럼

이제는 내가 그의 충견이 되어 몸을 일으킬 때

가장 낮은 사람이 되어 그의 뒤를 따라나선다


보통 사람들은 집을 그릴 때 지붕부터 그리지만, 목수는 바닥부터 그린다고 한다. 아무리 위대하거나 보잘것없는 건축물도 그것을 지탱해줄 바닥이 없으면 설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우리는 높은 것을 우러르고 낮은 것을 내려다보느라, 바닥 없이는 높이가 없다는 사실을 종종 망각한다. 바닥은 힘이 세다. 높은 것은 저 홀로 존재할 수 없어도 바닥은 모든 높은 것을 떠메고도 끄떡없다. 높이가 바닥을 부정할 때 어떤 마천루도 균열이 시작된다. 가장 빛날 때 그림자가 선명해지는 까닭은 바닥을 잊지 말라는 충고다. 낮은 곳이 높은 곳이다.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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