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금융정책

[구조조정, 회생DNA를 찾아라]중심 잡는 '구조조정 집도의' 안보여...이대론 '제2하이닉스' 없다

<1>사라진 '윈윈 구조조정'

현대건설·SK글로벌·대우건설·LG카드 등

정부 컨트롤타워 역할하고 채권단이 공조

혹독한 과정 거쳐 '알짜기업' 부활 성공사례

범정부 차원서 구조조정 틀 정비 서둘러야



2000년대 초반 정부 관료들과 채권단은 구조조정 기업들에 ‘엄한 산타클로스’로 통했다. 정부의 구조조정 주문은 가혹했지만 이를 견디면 회생의 빛이 보였기 때문이다. IMF 구제금융이 끝나고 굴지의 기업들마저 휘청거리며 구조조정 대상으로 쏟아져나왔지만 컨트롤타워인 정부가 중심을 잡고 채권단이 공조하면서 위기를 겪던 기업들은 혹독한 트레이닝 과정을 거쳐 다시 태어났다.

하이닉스(현 SK하이닉스), 현대건설, SK글로벌(현 SK네트웍스), 대우건설, 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 LG카드(현 신한카드). 이들 기업은 2000년대 초반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 등 구조조정에 돌입한 곳들이다. 모두 인수합병(M&A)을 통해 현재 계열그룹 등에서 든든한 알짜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잘된 구조조정이 열 기업 부럽지 않을 만큼 현재 이들 기업은 국가와 시장은 물론 채권단에도 짭짤한 이익으로 돌아왔다.


다수의 기업 구조조정 성공 사례 중에서도 하이닉스는 그 정수로 꼽힌다. 하이닉스는 지난해 SK그룹의 영업이익 10조원 중 절반이 넘는 5조3,361억원을 담당했다. 구조조정 당시 2조원가량의 적자를 냈던 회사가 채권단 관리 후 M&A를 거쳐 5조원을 벌어들이는 캐시카우로 거듭난 것이다.

과정은 아팠지만 우리 경제에 희망을 안긴 ‘윈윈’ 구조조정이 ‘변양호 신드롬’에 휘말려 자취를 감추고 있다. 책임 회피에 급급한 관료들은 금융 시장 논리에만 빠져 있는 채권단에 모든 결정권을 넘겼다. 이번 한진해운 법정관리행의 결과를 아직 예단하기는 이르지만 당장 불어닥친 후폭풍을 보더라도 희대의 오판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정부 내에서도 현명한 ‘구조조정 집도의’가 사라진 상태에서 ‘제2의 하이닉스 신화’는 불가능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나온다.


하이닉스와 현대건설 등 과거 구조조정 성공 사례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정부의 ‘막후 지원’이었다. 정부는 산업의 큰 그림을 그리고 주채권은행에 힘을 실었다. 이처럼 과거 성공한 구조조정에서 정부의 보이지 않는 손 역할은 지대했다. 정부는 삼성·현대·LG 등 5대 기업의 경우 산업 합리화 차원에서 반도체 등 중복되는 업종은 빅딜을 통해 하나로 합치고 경쟁력 있는 산업을 추려 구조조정 시간을 최대한 단축하라 등 분명한 구조조정 원칙을 시장에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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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현재의 상황은 과거와 너무 다르다. 구조조정은 땜질식으로 이뤄지고 정교한 집도의 역시 눈에 띄지 않는다. 정부에 구조조정 로드맵이 없고 전문성이 떨어지면서 최근 진행 중인 조선·해운 구조조정이 과연 해당 산업의 회생과 경쟁력 제고를 담보할 수 있을지 의문만 쌓이고 있다. 관료집단에 전문가가 없다 보니 세계 1등인 조선업에 대한 구조조정을 조선해양플랜트협회가 주관해 외국계 컨설팅 업체가 밑그림을 그린 형편이다. 한진해운 법정관리 결정 직후 벌어지는 물류대란만 보더라도 국적 선사의 법정관리가 국내 산업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금융당국의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음을 반증한다.

아울러 구조조정의 컨트롤타워로서 정부의 역할도 낙제점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범정부 차원의 총력전이 필요한 기업 구조조정에 금융위원회 혼자만 고군분투하고 있다. 정부 내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지적에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6월 부총리 주재의 관계장관회의를 신설했지만 역할은 사실상 유명무실하다. 여전히 금융위원회와 채권단이 구조조정을 전담하다 보니 산업 전반에 걸친 이해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한진해운 법정관리 결정은 서별관회의 파장으로 청와대가 몸을 사린 사이에 금융위 주도로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금융위는 추가 지원은 없다는 원칙만 고수한 채 물류대란 등 산업 전반에 걸친 부작용은 간과했다.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다 보니 국가 물류 산업을 너무 쉽게 포기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산업 전반에 대한 로드맵뿐 아니라 채권단 내의 의견 조율 기능에서도 정부가 손을 뗀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2000년대 초 구조조정 당시에는 실무를 채권단에 맡겼지만 채권단 간 의견이 부딪힐 때 정부는 중재자를 자처했다. 당시 구조조정에 참여했던 한 은행 관계자는 “주채권은행과 채권단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면 정부가 신속히 교통정리를 했기 때문에 속전속결 구조조정이 가능했고 채권단 간 잡음도 없었다”면서 “현재는 정부는 채권단에 거의 수수방관자로까지 비친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산업 전반에 대한 로드맵과 전문성 결여, 여기에 보신주의까지 더해진 구조조정 틀이 다른 업종에까지 적용될 수 있다는 우려다. 특정 기업의 회생과 이를 기반으로 한 산업 경쟁력 제고라는 구조조정 본연의 기능을 되찾지 못한다면 제2, 제3의 한진해운도 나올 수 있다는 경고가 쏟아지고 있다. 국책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지금과 같은 구조조정의 틀로는 건설적인 방향으로 산업구조 재편이 이뤄질 수 없다”며 “범정부 차원에서 구조조정의 틀을 조속히 정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보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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