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러시아 극동 경제 개발 참여에 새 지평이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 극동에서 시작해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까지 이어지는 경제 무대를 구축하겠다는 우리의 구상이 현실화할 계기가 이번 한·러 정상회담을 통해 마련된 것으로 평가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3일 러시아 연해주의 중심 도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한국과 유라시아경제연합(EUEA)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위한 양국 정부 간 협의를 10월 열기로 합의했다.
EAEU는 러시아가 주도하는 관세동맹체로 카자흐스탄, 벨라루스, 아르메니아, 키르키즈스탄 등 5개국이 회원국이다. 총 인구는 1억8,000만명이고 국내총생산 합계는 1조6,000만 달러다. 무엇보다 EAEU와의 FTA가 체결될 경우 한국은 기존 한·유럽연합(EU) FTA에 더해 유럽부터 중앙아시아를 거쳐 극동까지 이어지는 광활한 지역과 자유무역지대를 하게 된다.
한국과 EAEU는 지난해 12월부터 민간차원의 연구를 진행해 지난달 말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세미나를 열고 스터디를 마무리했다. 이에 더해 10월부터는 정부 간 협상을 시작하기로 한 것이다. EAEU 각국이 각각 국내 승인을 해야만 FTA가 체결되는 구조여서 정부 간 협상을 러시아가 지원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와 함께 양국은 이번 박 대통령 방문을 계기로 경제 분야 21건을 포함한 총 24건의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총 3억9,500만 달러 규모의 러시아 극동개발 프로젝트에 한국이 참여하는 데 합의했다. MOU 중 6건은 양국 대통령이 자리를 함께 한 가운데 서명이 이뤄졌다.
주요 MOU를 살펴보면 먼저 해양수산부는 블라디보스토크 항만 지역에 5,000만 달러(5만톤) 규모 수산물 냉동창고를 짓기 위해 투자하는 내용의 MOU를 러시아 수산청과 체결했다. 보건의료 분야에서는 1억7,000만 달러 규모 캄차트카 주립병원을 짓는데 한국이 역할을 하는 내용의 MOU가 체결됐다. 환경 분야에서는 하바롭스크에 들어설 1억7,500만 달러 규모 폐기물 처리시설 프로젝트에 한국 기업이 참여하기로 했다.
강석훈 청와대 경제수석은 “제조업과 자원 분야에 집중됐던 한·러 경협을 농·수산, 보건·의료, 환경 등 고부가가치 사업으로 확대하고 러시아의 신동방정책에 맞춰 극동지역 경협 파트너십을 강화한 것이 핵심 성과”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이번 박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을 통해 민간에서 추진하던 극동 관련 대형 프로젝트의 본계약이 이뤄졌거나 계약 확정 단계로 들어갔다. 강석훈 경제수석은 4일 중국 항저우에서 브리핑을 열고 “박근혜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2~3일)을 계기로 나호트카 비료공장 사업, 유조선 건조, 조선업 컨설팅 등 3개 프로젝트에 대한 수주 또는 사실상 수주가 이뤄졌다”고 밝혔다.
먼저 현대자동차그룹 산하 현대엔지니어링과 현대건설 컨소시엄이 수주한 나호트카 비료공장은 총 51억 달러 규모로 2022년까지 러시아 연해주 나호트카에 세계 최대 비료공장을 짓는 내용이다. 현대엔지니어링 컨소시엄은 지난 2014년 9월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뒤 세부 협상을 해오다 이번 박 대통령 방러를 계기로 본계약을 체결했다.
아울러 현대중공업은 러시아 국영 선사인 소프콤플로트가 발주하는 6억6,000만달러 규모 유조선 12척 건조 계약을 9월 말 체결하기로 합의했다. 현대중공업 역시 올 8월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으며 이번 박 대통령 방러를 계기로 본계약을 눈앞에 두게 됐다. 러시아 측은 현대중공업의 유조선 수주 조건으로 쯔베즈다 조선소의 선박건조 기술협력을 위한 합작회사 설립을 현대중공업 측에 요구했는데 관련 양해각서가 이번 박 대통령 방러를 계기로 체결됐다.
이같은 범현대가의 57억6,000억 달러 수주 대박과 함께 대우조선해양 자회사 DSEC은 러시아 쯔베즈다 조선 클러스터 조성을 위한 기술자문 조인트벤처를 설립하기로 했다. 합작사는 쯔베즈다 조선 클러스터 사업의 1단계 평가·보완 및 2단계 조선소 개발 방안은 물론 기술 교육·훈련, 정보기술(IT) 솔루션 제안 등 종합 컨설팅을 제공한다.
/블라디보스토크·항저우=맹준호기자 next@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