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생활

[데스크칼럼] 롯데의 선택, 검찰의 선택

홍준석 생활산업부장

슬픔 속 벼랑끝 위기 몰린 롯데

그릇된 관행 고칠 혁신 나서야

검찰 역시 원칙대로 수사하되

신속 조치로 경제파장 최소화를

홍준석 생활산업부장홍준석 생활산업부장




지난주 고(故) 이인원 롯데그룹 부회장의 빈소에서 마주한 영정사진의 고인은 온화한 미소 속에서도 반듯하고 당당한 모습이었다. 10여년 전 취재기자 시절 느꼈던 꼿꼿한 이미지 그대로였다. 특히 이 부회장의 마지막 기자간담회로 알려진 2006년 12월 어느 날은 아직도 기억이 또렷하다. 당시 롯데쇼핑 대표로서 그해 롯데쇼핑 상장과 우리홈쇼핑 인수 뒤 첫 공식 행사였는데 기자들의 까다로운 질문에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우리홈쇼핑 인수가가 높은 게 아니냐는 지적에는 “개별 주가로 판단할 사항이 아니다. 성장성과 오프라인의 시너지 효과를 고려했다”며 반박했고 상장 후 주가 부진에 대해서는 “공모가 이하로 떨어진 것은 우리 책임”이라며 허리를 숙였다. 백화점의 비싼 수수료에 대해서는 “100개 팔아주는 곳과 10개 팔아주는 곳은 다르다”며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곤란한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시시비비를 분명하게 가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그 이후로도 롯데 안팎에서 ‘카리스마 리’의 얘기를 종종 전해 들었다.

그런 이 부회장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이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술담배를 안 하고 신앙심이 철저한, 그렇게도 강인한 분이 왜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과연 무슨 말을 하고 싶었고 무엇을 남기고 갔는지 줄곧 뇌리에 맴돌았다. 힘든 가정사와 한평생을 바친 롯데의 추락 속에서 고인의 말 못할 고뇌를 이루 짐작할 수는 없겠지만 분명 롯데의 굴기를 남아 있는 모든 임직원이 이뤄주기를 간절히 바라지 않았을까.


위기와 절망을 딛고 다시 힘차게 일어서야 한다는 대선배의 묵시적 울림 앞에 롯데의 선택은 분명해졌다. 과거 신격호 총괄 회장 때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고 누구보다 투명한 롯데로 거듭나 시장과 고객의 신뢰를 하루빨리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다. 특히 전 직원이 한마음 한뜻으로 시스템을 개조하는 수준으로 변혁에 동참해야만 ‘뉴 롯데’로 거듭날 수 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선택도 명약관화하다. 오너가 직접 전면에 나서 조속히 조직을 추스르는 한편 강력한 신상필벌 등을 통해 생살도 도려낼 만큼 환골탈태의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이 부회장의 상가에서 흘렸던 눈물이 헛되지 않고 ‘사랑받는 롯데’ ‘대한민국의 롯데’로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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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는 만큼 당장 롯데의 선택은 쉽지 않다. 많은 이들의 우려대로 재계 5위인 롯데그룹의 시계는 3개월째 멈춰 서 있다. 지난 6월10일 검찰의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시작으로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이 줄줄이 검찰에 소환, 조사받으며 그룹은 사실상 마비 상태다. 경영공백으로 신사업이나 투자는 엄두도 못 내고 물 건너간 롯데호텔·코리아세븐 등의 상장은 향후 일정이 불투명하다. 롯데의 꿈인 롯데월드타워 완공과 글로벌 1위를 꿈꾸는 롯데면세점의 행보에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특히 시장의 신뢰가 추락하면서 회사채 발행이 막히는 등 유동성이 경색됐고 계열사 실적도 곤두박질치고 있다. 검찰의 전방위적인 수사 여파가 상상외로 치명적인 상황이다.

이를 우려했을까. 이 부회장은 유서를 통해 “비자금은 없다”고 마치 검찰을 향한 것처럼 마지막 말을 남겼다. 물론 유서의 진위와 관계없이 수사는 계속돼야 한다. 기업비리와 정경유착이 포착되면 엄벌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무분별한, 특히 장기간 수사는 자칫 기업의 신뢰를 떨어뜨려 존립을 위협할 수도 있다. 특히 롯데처럼 시장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지대한 기업은 더더욱 그렇다. 이 부회장의 비극적 선택으로 검찰의 선택도 분명해졌다. 오랜 수사로 롯데그룹이 고꾸라지게 해서는 안 된다. 단호하면서 신속한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 수사의 종착역이 절실한 시점이다.

홍준석 생활산업부장 jshong@sedaily.com

홍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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